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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4월 29일을 기억한다. LA폭동

사진 출처: 구글

한국에서 접했던 LA 폭동. 그러나 사실 누적된 인종갈등과 오해들이 터져 발생했고, 고스란히 한국 교민들이 감내해야했다. 2003년 프랑스에서 알제리 배경을 가진 이들의 폭동이 발생했고, 2011년 영국에서도 발생했다. 모든 배경은 다르고, 그 규모도 성격도 다르다. 그러나 갈등의 근원에 존재하는 차별과 경제적 박탈감에는 모두 궤를 같이 한다. 
다양한 문화적 혼재와 다른 피부색과 언어를 한국 사회 내에서 경험하는 건 이제 어렵지 않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한국에 귀국한 나에게 여전히 다른 피부와 언어는 관광객의 요소였다. 그러나 한국어가 사라진 홍대 정문을 지나치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생활 습관 속에 타국의 이미지들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짱깨” “왜놈” “피를 섞는” 등등의 문화적 차별이 새겨진 용어들이 내 인식에서 걸러질 수 있도록 필터에 신경쓴다. 그러나 무심하게 나오는 “중국은…” 이라며 선입견의 관념들은 대화 속에서 나를 지치게 한다. 
어쩌면 그런 인식은 우리와 역사적 연관을 갖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얽힌 역사 속에서 우리가 상대방의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또 하나는 무심함이다. 우리와 관계가 없었던 국가에 대해서는 현재의 가치, 그러니까 경제적인 기준에서 매긴다. 사실 그 기준도 현재에 있지 않고, 우리가 언론에 드러난 만큼의 기준에 있다. 예를 들면 에디오피아의 경제 성장율이 높고, 과거 한국전쟁에 참전한 국가로 경제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근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각인되어 가난한 국가로 인지되고 있다. 필리핀에 대해서 특별히 영어 사용에 대한 오해가 많다. 특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만큼 그들은 영어 실력이 (한국내 왠만한 백인강사들보다) 뛰어나지만 그들의 피부색과 선입견으로 한국 교육현장에서 무시되거나 배제된다. 
단일문화권이 가진 문화적 선입견은 자국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국가를 형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는 혈통 다음으로 경제 또는 체제의 계급을 통해 서열이 매겨진다. 그렇다면 미국과 같은 이민국가는 어떠할까? 앞서 살펴본 우리의 이야기들과 비슷한 현상을 발견하는데, 미국의 문화적 핵심은 소위 WASP,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에 있으며, 그것이 서열로 나타난다. 이민자들이 문화 중심에 동화되는 것도 WASP에 따른다. 영국과 프랑스의 폭동에서 비슷한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국가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사회 내 고용이 줄어들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사회내 인종 차별적 요소는 가시적이 되였고, 이것이 폭발함으로 ‘폭동’이라는 집단행동으로 표면화 된다. 

사진 출처: 데일리 메일. 2003 영국 폭동


LA폭동에서 우리는 미국내 다양한 층위에서 그 원인들을 살펴보았지만, 지금 우리가 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집단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실존한다는 점이다.
 이 집단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고,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수 있지만, 이렇게 형성된 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 내 다양한 층위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영향은 폭력으로 확장될 수도 있고, 또는 이웃으로 확장될 수 도 있다. 그 가능성은 오롯이 우리의 행위로 기원한 미래의 모습이다. 

LA폭동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도 아픈 과거이며 고통스러운 상처로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끈질기게 이를 기억하면서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다양한 층위의 질문들을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오늘의 나에게는 관계의 태도 속에 내포된 선입견이라는 인식의 필터가 얼마나 촘촘하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에 대한 민감성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