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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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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국제 선교사 자녀에 관한 수양회”를 찾다. ICMK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1984년에 있었던 “국제 선교사 자녀에 관한 수양회”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누가 주관했고, 누가 참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을 계기로 한국 내 선교사자녀에 대한 이슈가 등장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백인숙(MK NEST 전대표)에 의하면 ICMK(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ssionary Kids)가 고 데이빗 폴락에 의해 주도되어 3차례 진행된 모임이었다. (1차 필리핀 마닐라, 2차 에콰도르 퀴토, 3차 케냐 나이로비)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3차 나이로비 대회에서 비서구권 MK 케어에 대한 구체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11년에서야 싱가포르에서 이뤄졌다. http://withtck.tis..
한국에게 있어서 세계화 기준은 "다른"존재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태도다. 세계화라는 단어에 있어 세계화의 기준이 무엇일까? 호미 바바는 지난 2009년 방한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누가 소외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세계화는 경제적인 프로젝트인 동시에, 윤리적·도덕적 차원의 프로젝트로도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타민족에 대한 윤리적 도덕적 태도가 세계화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타민족에 대한 부분은 특히 비서구국가 만이 아니라 조선족, 고려족, 탈북자, 그리고 외국에서 성장한 한국인들을 포함한다고 하면 너무 나갔다고 할까? 그럼에도 안타깝게도 우리와 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도 차별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교육을 통해 동화시키려는 태도는 오히려 부작용..
한국기독교를 생각하면서... 전통이라는 측면을 지키고자 하는 기독교에게는 진보나 개혁이나 변혁이라는 단어 모두가 불편할 것이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혁명적 측면을 애써 종교적인 측면으로 축소시키려고 한다. 종교는 사회와 맞닿아 있으며 정치와 경제 역시 내포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애써 중립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적어도 내부적 혼돈을 우려한다기 보다는 내부에 있는 부조리들을 보호하려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식인들은 지난 계몽주의 이후로 지속적으로 종교적인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으며 이런 활동에 대해 종교는 이미 갖고 있는 권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트라우마를 이용하여 이들을 매도하며 자신들을 지켜왔다. 예수님의 큰 사역 중 하나는 바로 그런 종교의 실체를 폭로시킴으로 기존의 유대교를 흔드셨고, 사도 바..
추석 귀경길 풍경 1. 와퍼를 먹었다.
다문화 범주화보다는 공동체성 회복으로 가야합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다문화 사회의 한국화입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 전반을 보더라도 법과 사회 통념, 그리고 관습이 보여주는 엇박자는 오히려 혼란과 비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서구의 가치사상과 한국(동아시아)지역의 가치사상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Crossculture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떼 선교사 자녀들을 중심으로 사역하게 되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청소년기를 보낼 때, 남들과 비슷한 고민과 충돌을 거치면서 성장하였지만 그 시기에 문화를 뛰어넘는 경험들을 가지게 될 때, 다수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질적인 가치체계가 들어와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사기 19장이 보여주는 것,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오늘 사사기 19장을 읽으며, 다시한번 멘붕을 만났다. 이 이야기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다는 말인가? 종교적인 레위인, 그리고 나그네를 잊어버린 이스라엘, 그리고 베냐민의 악행과 가족주의... 이 모든 것이 모여 내전을 만들었다. 왕이 없으므로, 지도자가 없으므로... 라고 말하는 사사기 저자는 왕정의 절대성을 지지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버린 이스라엘은 여전히 부족시대의 혼돈을 겪으면서 피를 불렀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돌아선 이스라엘은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종교적 제의와 형식만으로 외형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생존만을 바라게 된다. 그 결과는 도덕성이 무너지고, 가족은 붕괴되고, 호의는 사라졌고, 사회질서도 무너져버렸다. 그 결과는 베냐민의 돌발행동과 그에 따른 학살..
그들의 신앙을 지켜봐주자. 출처: http://etv.sbs.co.kr/news/news_content.jsp?article_id=E10004532233 최근 박진영씨의 이야기와 몇곡의 노래가 페북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의 변화와 인생에 대한 질문은 분명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편한 하나는 기독교라는 종교적 포교 측면에서 "우월성"을 의도한 이들의 공유하기이다. 정말 기독교가 현 시대에서 우월하다면 그 우월함이 사회적으로 탁월함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의 고백 "찾고 있다"는 나그네적인 답변은 오히려 마치 답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라고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질문으로 찾아온다. 그렇다면 너는 "행복하니?" 너의 주변은 너로 인해 "행복하니?" 성급하게 밀어대지 말자. 그냥 구도자의 삶을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