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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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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려오는 분노, 넌 어디서 오는거냐? 가끔 한국 사회에서는 원인과 과정을 싸그리 먹어버리고 결과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려는 분들을 만난다. 그 결과를 토대로 심성 기저에 감정적 방아쇠를 남겨두었다. 그래서 남은 건 알 수 없이 치밀어오르는 밑도 끝도 없는 분노에 분노로 팽팽해진 긴장뿐이다. 복잡한 한반도의 역사를 단순화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난 세대의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의 유령이 준 공포이기도 하다. 어느 것 하나 완전함없는 불안한 토대를 안전과 평화라는 껍질을 덮어버린 그런 기단 위에서 합법적인 차별과 억압의 역사는 꽃을 피운 것이다. 반대로 인간의 존엄과 아름다움은 그 앞에서 마른 풀처럼 바스락거리며 죽어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아무도 거기에 답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오늘도 점을 찍고 내일에게 바톤을 넘긴다.
장례 장례란 보내는 이와 남은 자들이 얽혀져 묘한 내음이 있다. 집에서 장례를 치뤘던 경험있는 나에겐 요즘처럼 조용한 장례식장을 보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장례란 화투, 술, 그틈에서 얻는 용돈들과 음식들, 그리고 공개적인 밤샘의 놀이가 숨어있는 곳이다. 한때 퇴폐라는 것으로 보았던 그것들이 정겨운 건 고인을 환송하고 이땅에 발붙이고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가야할 이들의 위로요 동네 모두가 고인을 보내는 환송의 장인 것이다. 그 떠들석한 마당 너머로 망자를 향한 거짓된 울음들이 만드는 화음은 기이하다. 그러나 그 역시 장례라는 환송회에 없어서는 안되는 소리이자 대문 밖에 걸린 등불의 메아리다. 거한 밤이 지나 동녁에서부터 푸른 밫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새벽이면 가마니 위로 솔솔 올라오는 한기에 더하여 움추리..
다양성이라는 무지개를 생각한다. 무지개는 우리의 세계가 하나님의 빛 속에서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자 홍수의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다. 다만 우리는 아직도 문화라는 습성을 진리와 결착하여 획일화하고, 자기 중심으로 해석하여 판단하는 태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미움으로, 그리고 분쟁으로 이어져 죽음에 이르게 된다. 문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읽어가는 이들에게 존재하는 필터는 우리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상당부분은 문화적인 것을 덧입혀 교조화시키는 경향을 보인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