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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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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신자 선교사를 기억하며. 김신자 선교사님 추모 예배를 참석하고 나서. 사람을 추모하고 추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결국 남은자들을 위한 것이다. MK사역에 헌신하고 나름의 결정하신 길을 걸어가셨던 그 분의 걸어가신 길을 가족들에겐 외로움 그 자체였던 것 같다. 그래서 선교사자녀 사역에 교회의 시쿤둥한 반응은 가족들에게 상처였고, 아마도 그래서... 가족은 김 선교사님을 환영하고 반응해주는 그들이 있는 곳으로 부르셨나 보다. MK사역을 걸어가면서 어디 한두번이었을까? 애씀의 길, 타인을 돌보는, 그 냉담함을 보여준 교회를 향한 길이었다는 점에서 상처는 우군이라 불리운 이들에게서 온다는 점은 MK사역이 갖는 아이러니다. 그런데 그 추도예배에서 가족은 위로를 얻었단다. 참석한 이들이 많아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분의 가신 길..
가족이라는 변수. 부제: 우리의 무비판적 낙관론의 근원은 생활계획표 때문이다! 가족의 존재란 불편하면서도 나를 성찰하게하는 중요한 요소다. 아니 어쩌면 존재, 그 자체가 나인지 모를 일이다. 존재들의 하나 하나가 만드는 변수들이 조합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인 듯 싶으면서도 돌아보면 어떤 궤적을 찾아내는 그런 항해의 배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거란 신화를 나침반 삼아서 말이다. 가족이 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혈연집단의 연속성을 우리는 그리도 붙들고 있나? 답없는 질문들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순간들은 아마도 가족이라는 존재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의 극대화된 지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의 다양성을 지향하는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나 사회는 가족의 제도를 완전히 해체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일까? 싶은 마음도 든다. 어제 2015년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