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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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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교사 평가에 대한 단상 어제, 그러니까 2019. 7. 19. 낮에 요도 어딘가에 걸린 돌을 묵상(?)하다가 최근 어떤 일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연결되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읽어가니 몇가지 문법적으로 수정할 부분이 있겠지만 그당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수정없이 올려본다. 선교지에서의 갈등과 선교사 평가는 항상 한쪽의 이야기에서 판가름낼 수 없다. 특별히 사건과 관련된 경우, 누적된 정황들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라는 것이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논의가 다르고, 앞서 있었던 상관관계가 있는 사건들 가운데 무엇과 인과관계로 묶을 것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점에서 특정 편의 이야기들은 주로 그런 인과관계의 연속성에 따라 갈라진다. 또 하나는 누구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TCK 개정판이 나왔다. 데이비드 폴락이 한국선교에 미친 영향력은 공식적으로 드러난 흔적이 거의 없지만 선교사자녀를 언급할 때면 반드시 거론되는 존재다. 내가 가진 자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1986년 GMTC에서 발간한 선교 연구에서 이태웅 박사님이 쓴 글이고, 거기서 등장하는 ICMK(1984)는 데이비드 폴락이 세운 Interaction에서 주최한 것이다. 그리고 1989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3차 ICMK수련회에서는 비서구 MK 지원과 위원회 구성이 제안되었다.현재 한국 선교에서 선교사자녀에 관한 교육방향성은 1993년 KWMA에서 주최한 한국MK 교육컨설테이션 에서 고안되었다. 이 대회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데이비드 폴락의 제안이었고, 위클리프의 폴 넬슨이 함께 방문하여 진행되었다. 제 3문화 아이들(Third ..
선교사 멤버케어는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작 2013년 11월 25일 선교사 가정에 대한 책무 관련 발표회가 온누리 교회에서 있었다. 기독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한국 선교사 멤버케어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만 여명의 한국 선교사들과 이들을 보낸 한국 교회는 멤버케어라는 주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서구에 비해 한국 선교 역사는 매우 짧기 때문에 멤버케어의 미성숙함을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근본적으로 멤버케어를 접근하는 방식과 이해에 있어서는 불편하다. 멤버케어의 함의와 정신보다는 기능적인 접근과 문제 해결에 관심이 높고, 멤버케어가 한국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MK들의 고민. "돌아갈 집이 없어요" 사람이 사는 데 의식주만큼 중요한게 없다. 현 정부가 시민들에게 얻어맞는 이유도 결국 의식주 해결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역사 속에서도 동일하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돌아갈 본향"이 있어서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을까? 글쎄... MK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고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당수의 MK가 어렸을 때 한국을 떠나서 해외에서 살다가 대학입학, 군대 등의 이유로 귀국하게 되면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먹고'가 아닌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들은 귀국 후 친척집을 소개받아 가지만 오래 있는 것을 불편해 한다. 일단 그들은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몸에 어느정도 붙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친척들의 여러 환대에도 불구하고 그 집 냉장고 문을 열어 ..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舊 順川宣敎部 外國人 어린이學校) 사진출처: 한국 문화재청 한국 선교에 1910년도 전남 순천에 사역하던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다. 순천선교부는 미국 남장로회에서 세운 지부로 광주 지부에서 활동하던 코잇(Robert Thormwell Coit, 한국명:高羅福 고라복)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순천의 매산 학교를 세우기도 했는데 이 지역 여성 교육에 크게 이바지 했다. 이후 학교는 조선총독부의 성경정과 교수를 불허한다는 이유로 인해, 그리고 신사참배 반대등으로 폐교를 하기도 했는데 1946년에 다시 개교하게 되었다. 이들 자녀들을 위해 세운 학교로 현재 순천시 매곡동에 위치해 있다. 이곳 호남지역 선교부는 일제 강점기 동안에도 활동하였는데, 한때 콜레라가 창..
선교사자녀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심은? MK이슈를 검색하다가 학술지들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간혹 글이 있긴 했지만 2006년 이후로 지지부진한 느낌이다. 선교계에 당면한 이슈들이 있다. 특히 멤버케어는 최근에 부곽된 주요 이슈다. 그중에 MK는 항상 당면했던 문제였지만 왠지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선교사 중도 탈락의 상당수가 자녀문제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쉽게 밀려날 수 있는 일이 아닐텐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다 다음과 같이 혼자서 결론을 내린 것은 1. 전문 MK사역자 수가 적다는 것이다. 이슈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은 MK사역자다. 그런데 실제 활동하는 수는 단기를 포함해서 100여명 내외다. 2.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글보다 활동이 먼저다. 한국 선교 4반세기를 돌아보며 제대로된 선교 이론이나 실제를 다룬 책은 손꼽을 정..
MK NEST 저널 38호 발간 "재입국" http://mknest.tistory.com 지난 11월에 있었던 MKBN내용을 정리하였다. 아직 국내 유일한 MK 저널이어서 네스트에서 그 내용을 기획을 담았는데 이번호로 저널은 멈출 예정이다. 대신 블로그로 전환되는데 아무래도 기획자의 기획력 부족과 에너지가 딸리는 상황때분이기도 하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거나 다루고 있는 것들의 이야기를 발간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면 좋을 듯. 지난 2년동안 안고 오면서 저널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는데 최근 SNS와 연계되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잘 퍼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있어서 블로그로 전환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것 같다. 또 홈페이지 관리가 개인적인 능력이 부족해서 거의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기도 ..
한국에 온 서구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 사진을 찍고 정보를 따로 적지 못해서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초창기 한국에 머물던 서구 선교사들과 가족들의 모습이다. 원산 또는 이북 어딘가로 기억하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선교사자녀들은 많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자란 아이들이며 이들 중 얼마는 토착병에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도 있었을 것이다. 98년도에 처음 양화진에 가서 놀랐던 수많은 영아들의 비석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적어도 무사히 태어났고, 여기까지 성장한 이들이다. 이들은 무엇을 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내가 예수를 믿었고, 또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