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여권을 만들 때, 내 성을 B로 시작하려 했지만, 문득 큰아버지의 편지에서 마주했던 성이 떠올라 결국 P로 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는 다른 영문 성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요즘 미국의 출입국 상황을 보면 언젠가는 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제지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사촌 형의 영문 이름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가족의 항렬자는 ‘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joon’, 나는 ‘jun’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만약 형의 이름을 여권을 만들 당시에 기억했다면, 적어도 항렬자는 맞췄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어쨌든 단순한 철자 차이처럼 보이지만, 문화 사이를 넘나들며 생기는 위화감은 종종 이런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곤 한다. 마치 분명히 한국인이면서도, 누군가에게 ‘북쪽이냐 남쪽이냐’는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처럼 낯설고 불편하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은근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이런 경험은 단순히 문화적 배경 때문만은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맥락, 감수성의 차이 역시 깊이 관여한다.
선교사 자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비슷한 경험을 두고도 어떤 이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또 어떤 이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동일한 ‘차이’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그들의 모습은, 때로 어떤 경향성을 드러내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그것을 일반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물론 이는 연구자로서 경계해야 할 편향의 한 모습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복잡한 삶을 단순화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본능의 반영이기도 하다. 분명 사람마다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주 범주화라는 도구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려 한다.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접근일 수 있지만, 연구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런 시선을 점차 경계하게 되었다. 그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더 가까이서 듣고, 맥락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결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TCK라는 개념을 단순하거나 쉽게 정의될 수 있는 개념으로 의심없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류의 중심에 위치한 이들에게는 이 용어가 큰 혼란 없이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정작 다수의 TCK들은 자신의 삶의 여러 지점에서 이 범주의 전형적인 특성과는 어긋나는 요소들을 경험하곤 한다. 『평균의 종말』에서 말하듯, 집단을 평균으로 설명할 때 개별 인격의 고유함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이 복잡한 정체성과 서사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처럼, 개개인의 내면적 다양성 또한 그만큼 깊이 있게 다뤄져야 한다. 그리고 어떤 특정 집단을 향해 문화적 혹은 사회적 우월감을 부여하며 계층화하려는 시도는 피해야 한다. 정체성은 서열화의 대상이 아니라, 경청과 존중 속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차별: 지속적으로 고통을 주는 일상생활 속 '미세한 차별' - BBC News 코리아
미세한 차별이 쌓이면 향후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www.bbc.com
한국 선교사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의 다문화 교육적 고찰
원문링크: ACTSTJ 2020, vol.46, pp. 223-257 (35 pages) 발행기관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ACTS 신학연구소 이번 연구에서 선교사들에게 진행되는 부모교육에 깔린 전제들은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그 한계를
withtck.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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