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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잊는다는 슬픔보다...

거자일소(去者日疎)라 했는가?

죽어서 거리가 생기면 잊혀가듯, 내 삶에서 거리가 생기고 멀어진 것들은, 희미한 온기만 남아 과거에 어떤 무언가가 있었던가? 싶은… 그리운데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사라지게 된다. 

장항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었나?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 갈대밭이었으나, 일본의 산미증산계획으로 충청도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아래로는 전라도 군산, 위로는 충청도 장항을 통해 기차 종착역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가는 항구로 성장하였다. 오늘날 장항의 상징이 된 제련소 굴뚝은 1936년 일제 금수탈을 상징했다. 장항 제련소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일본으로 흘러가는데 그것마저 샀다는 동네 전설도 존재할 정도로… 그렇게 태어난 장항은 해방 후에도 제련소 하나로 먹고사는 곳이 되었다. 한때 제련소 직원이 일등 신랑감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유지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6공 시절에 군산과 장항을 엮어 산업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큰 기대가 일었지만, IMF 때문에 사업 타당성 논란에 휘말려 장항은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군산에 부모를 모신 나에겐 서울에서 통일호 장항선을 타고 내려와 배를 타고 군산으로 넘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통일호는 무궁화호로, 새마을호로 바뀌었지만, 도선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장항 역시 사람들이 떠나면서 도선도 문을 닫고, 장항선 개량공사로 더이상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고작 15년 전이다. 장항역은 장항선의 종착지가 아니라 중간 역이 되었다. 

장항을 거쳐 서천으로 가는 길에 주인 잃은 버려진 건널목과 간수들이 머물던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누구도 그곳에서 차들을 막을 필요가 없는 공간이자 철거비가 아까워 버려진 곳이다. 겨우 3년이 되었는데도 누구하나 멈추지 않고 기억하지 못한다. 나같은 이들이 잠깐 멈춰 그 길을 지났던 어제를 돌아보고 추억하는 상징… ‘그땐 그렇게 살았지.’라고. 

#KOMKED 캠프를 다녀 오면서 12년 전이었나? 그때 총무님이 캠프장소 답사차 경기도 모 수양관을 방문했을 때 따라갔던 일이 생각났다. 그분이 보여주신 그 애정은 (그 당시 좋아하진 않았지만) 정말 크고, 자부심도 대단했다. 불연듯 떠올랐던 그때 그 기억… 그렇게 어제를 묻고 오늘을 그려가는 그 자리에서 괜히 눈물이 차오르더라. 그눈물의 양만큼 내일의 내 기억에서 또 증발하겠지… 라고 생각하니 장항 서천에서 진행되는 MK리더십캠프는 내게 겹쳐 보인다. 그래 거자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