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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일의 생각. 교회가 ... 매주 교회에서 사도행전 설교를 듣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고 불편하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속 '예수가 그리스도이신가'를 둘러싸고, 수백 년간 축적된 유대교적 시스템과 메시아 운동이 부딪히며 생긴 그 고뇌와 분열의 다이나믹함 대신 "바울의 메시지에 반응했는가, 아니었는가"라는 이분법으로 성도들의 태도에 다가선다. 그리고 "오늘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에 반응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앙상하게 귀결되며, 나같이 의심하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경고한다(고 들린다). 바울 신학에 대한 불편함을 뒤로하고라도, 사도행전이 갖는 현장의 역동성은 현재의 교회에게 여러가지로 좋은 고민이 될텐데, 이리도 평탄화하여 성도를 향한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할까? 싶다. 성경에 대한 초대교회와도 같은 반응이 없는 건, 애..
'복음주의'에서 '선교적' 교회로의 이행이 남긴 과제 현대 기독교 지형(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선교적(Missional)'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인 '복음주의(Evangelical)'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아마도 복음의 전포괄적인 능력을 지향한다는 점이나, 결과적으로 본질을 상실한채 트랜디한 용어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지독히도 닮아 있다. 1. 복음주의의 축소와 '선교적' 대안의 신학적 배경일반적으로 복음주의는 오랫동안 "개인이 예수를 믿고 내세에 구원을 받는 것"과 "개교회 중심의 양적 확장으로서의 해외 선교"라는 영토주의적 개념으로 이해해 왔다. 거기에는 복음주의가 복음을 전하는 것 이상의 깊이를 추구하지 못했고, 선교의 확장에서 비롯된 현대 세계의 국제적 다층성에 대한 도전 속에서 부상한 것이 '선교적'이라는 언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선교적' 담..
담론의 한계, 근데 왜들 그리... 기본적으로 나는 결혼에 대하여 보수적이고, 젠더에 있어서도 보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 양상들과 현상에 대해서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납득할만한 것들 없이 덮어놓고, 맞고 틀린 건 아니다라는게 내 생각이다.사람들은 성경적으로 보수적이면 모든게 보수라고 생각하지만, 내 관찰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항상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게 유동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의견과 양상, 생각과 주장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또 누구와 이야기하는지에 따라서 강도와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표현하는 것과 감춘 것 사이에도 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배운바로는 이것을 마이크로컬처라고 하는데, 단지 미시적인 영역의 집단성을 의미하는 ..
부모도 하나님 자녀인데, 일해라절해라 하지마요. 오늘 수요 기도회 설교 역시 비평적으로 듣고, AI와의 문답을 통해 나만의 '기도 이야기'를 찾아나섰다.흔히 세대 담론이 가진 한계를 알면서도,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이에 기대곤 한다. 그러나 범주의 경계를 선명하게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범주 자체가 무너져버린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하곤 한다. 청소년 사역자로서, 동시에 두 딸의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온 부모로서 고백하자면, 내 안의 우울감이 폭발했던 순간들이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상흔으로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모든 부모가 나와 같을 수 없으며, 동시에 저마다의 거친 이야기 속에서 겨우 부모가 되어간다. 그러니 '일반적인 부모'의 범주를 설정하고 특성화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문득 기독교 부모교육에서 논하던 부모들의 성향과 정황들을 되짚어본..
개신교의 공동체 유산을 어떻게 만들고, 지키고, 물려줄 것인가 https://www.facebook.com/reel/910358235148066 조회 1.2만회 · 공감 399개 | 글로리파이어 on Reels www.facebook.com기독교의 주요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상징’으로 출발하는 영성이다. 상징은 그 의미를 포괄하여 일상 속에서 일상과의 구별, 즉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끈다. 상징은 단순히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신의 현현과 그의 거룩함을 개인을 넘어 공동체가 동시에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며, 공통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는 동력이 된다. 개신교는 이를 텍스트로 치환하여 말씀과 설교로 단순화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상징의 유용성은 개신교 안에서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굳이 성례전이나 침례와 같은 특정한 행..
[진로의 역설] 아비투스: 표준화라는 함정 속에서 공고해지는 인지적 신분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전기를 읽으며 느낀 경외감은 아마도 그의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그 주변의 친구들이 하이젠베르크가 기술한 대화와 진로를 찾아가는 여정에서의 인지 역량들을 보자면 혹시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탁월함은 생물학적 설계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들이 호흡하는 사회적 환경의 영향인가? 지난 10여 년간 진로의 여정에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모르겠어요”였다. 입 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진심이 있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이 아이들이 사회 속에서 경외할 대상을 찾거나 되고 싶은 존재를 꿈꾸는 법을 잊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사회참여와 기여에 대한 고민 또한 그들의 자리에서 듣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아..
예루살렘의 잿더미 위에서 로마를 기획하다. 누가의 기술 AD 1세기 중반, 나사렛 예수로부터 시작된 '그의 도(The Way)'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단일한 교리 체계가 아니었다. 당시의 시선에서 예수의 행보는 새로운 종교 창시라기보다 유대교 내부의 급진적인 개혁 운동에 가까웠다. 초기 공동체는 각자의 방식대로 예수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풀어냈으며, 예루살렘 지도부는 이러한 다양한 양상들을 조율하고 판단하는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역사의 격변이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1차 박해에 이어,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했다. 이로써 신학적 판단을 내리던 지도부는 사라졌거나 급격히 축소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바울을 포함한 1세대 사도들이 순교하는 격변기가 도래했다. 각지의 신앙 공동체들은 지도부를 잃은 채 생존을 위한 긴박..
지역대형교회에서 만나는 파라독스 "비전을 선포할수록 사람이 사라지는 곳, 공동체를 강조할수록 개인이 증발하는 지역 대형교회의 서글픈 모순에 대하여." 대형교회에서 마주하는 비극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겉으로는 영성을 말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느 회사와 다름없이 목표를 위해 사람을 부품처럼 소모하곤 한다.보통 당회와 같은 의사결정 기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세우면, 사람을 '키워내는' 긴 호흡의 기다림보다는 이미 검증된 인력을 ‘차출’하는 손쉬운 방식을 택한다. 물론 담임목사와 교회 사이의 역학 관계에 따라 양상은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청빙 과정을 통해 교회가 바라는 목사를 선택한 상황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담임목사는 자신을 뽑아준 이유를 증명하고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기 위해, 빠른 시간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