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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다문화 범주화보다는 공동체성 회복으로 가야합니다.


요즘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다문화 사회의 한국화입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 전반을 보더라도 법과 사회 통념, 그리고 관습이 보여주는 엇박자는 오히려 혼란과 비리를 양산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서구의 가치사상과 한국(동아시아)지역의 가치사상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Crossculture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떼 선교사 자녀들을 중심으로 사역하게 되면서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청소년기를 보낼 때, 남들과 비슷한 고민과 충돌을 거치면서 성장하였지만 그 시기에 문화를 뛰어넘는 경험들을 가지게 될 때, 다수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질적인 가치체계가 들어와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자란 우리들도 사는 지역과 환경, 그리고 부모의 직업에 따른 이동 등으로 인해 비슷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요.) 
그래서 "문화"와 "타"문화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 정의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타문화의 경계점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의 난제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에 재입국하여 성장하는 선교사자녀들을 보면서 잘 적응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재외국민자녀들도 비슷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경험들이 확장되면서 최근 증가하고 있는 탈북 청소년들, 다문화자녀들(혼혈) 등도 한국 사회 진입을 커다란 숙제로 안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사업들과 돕는 기관들이 생겨나고 확산되고 있지만 그에 비해 이들에 대한 연구와 교육/양육의 틀들은 희미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처우개선과 당장의 생존에 필요한 것들의 제공은 어느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대처하고 반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습니다.

저는 그런 원인을 크게 두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한국 사회가 단일문화, 한민족 사상을 기반으로 근대화 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 성장으로 인하여 빈약한 인문/사회 과학의 결과라고 봅니다.
근대화 과정에서의 민족주의 유입은 사실 19세기 유럽의 과정과도 비슷한거 같습니다. 이를 통해 빠르게 경제성장과 사회 통합을 가져왔습니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이분법적 범주화를 통해 우리와 너를 구분함으로써 적과 아군을 나누어 성장과 통합의 양식을 삼아왔습니다. 오늘날 다양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갈등도 이런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갈등이 논리적인 차이라기 보다는 감성적 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논리적인 사고를 통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 나가는 이성주의의 방법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나 사회 전반에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찾기 힘든 이유도 그러한 이유로 저는 판단합니다. 거기에는 인문/사회과학이 너무나 매말라버려서 사회를 연구하고 통합하려는 의지가 생존하기 어렵도록 합니다.
이런 악순환 속에서 다문화 사회가 열렸고, 경제적 지원을 통한 '알아서 성장하고 적응'하라는 인식은 보편적 정서로 자리잡았습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다문화 경험자들의 특징입니다.
다문화 경험자들은 적어도 각각의 문화가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하면 미국 문화를 청소년기에 경험하여 재입국한 한국인은 미국문화나 한국문화 그 어느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TCK(the Third Culture Kids)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전입하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먼저 적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다문화주의이론에 따라 적응하려는 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여 그들이 현재 한국의 상황(문화)로 들어오는 것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재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이런 정책이 어느정도 쓸모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멜팅팟(Melting Pot) 정책이 실패했다는 연구결과를 우리는 좀 더 수용해야만 합니다. 현재의 우리 정책은 미국의 20세기 중반에 취한 정책과 별 다를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본 기사는 저에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다음은 제가 Facebook에 올린 간단한 글입니다. 여기에는 제가 생각하는 한국 다문화 사회의 해법도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부분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할 생각입니다. 아마 Interculture(상호문화)에 대한 연구가 아닐까 싶은데, 이에 대한 한국(동아시아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만)적 방식이자 기독교적 방식인 공동체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것이 가장 한국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하니까요.

facebook. 
다문화 범주에 속한 탈북 청소년. 그들에게 있어서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들의 정체성을 혼란케 했을까요?

한국에 태어나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다문화, 민족 정체성...

도대체 한민족이라는 카테고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적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는 다문화라는 범주화보다는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적 가치가 조금은 현실적이고 효과적으로 보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MK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요. 자신을 설명하는데 다문화가 편리하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 집입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쉽게 재단하고 일반화하는 오류를 피해야 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한국 사회가 현재라는 시점에서 고려해 있는 것은 다문화 지원보다는 공동체의 회복이 현실적이고 한국 토착민(?)들도 쉽게 공감할 있지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https://www.facebook.com/barny73/posts/10202116549823531?notif_t=like 



다음은 기사 링크입니다. 
‘꽃제비’였던 한 탈북 청년의 고달픈 ‘한국 정착기’ 

2014. 6. 26. 추가 
공동체의 회복은 일차적으로 가정의 기능을 재정의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가정은 일종의 문화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족, 사회, 국가라는 단위에서 접근하는 공동체성은 개인들의 독특성을 쉽게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정체성 역시 특정 그룹을 정치적인 입장에서 모델링하고 기준으로 삼아버립니다. 반면에 가족이라는 단위의 공동체는 그 모델링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각 가족 공동체의 독특성이 소통의 과정을 통해 유사성 또는 동질성을 기반이 됩니다. 이런 과정의 반복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합의라는 절차를 반복하며 공동체는 그 시대에 맞는 모습을 찾아갈 것입니다. 이것을 "과정"이라 쓰고, 회복과 재정의라고 저는 부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