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서울에 올라오다. 아내가 올라왔다. 방학식을 마치자 마자 올라온 그녀와 나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랜만에 티격태격도 해보고, 서점에서 죽치고 책도 보았다. 아내를 이해하는 것은 결혼이 3년이 되어가도 어려운 일이다. 그녀에게도 나를 이해하는 것이 그렇겠지... 같이 산다는 것이 언제나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연약함에 대해서 보듬어 주기도 하지만 생채기를 주기도 한다. 알아감은 서로를 이해함이 되기도 하지만 이용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가끔 내 자신이 그렇게 잔인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데 아내를 생채기 낼고 나서 아내가 아파할 때이다. 그래도 같이 있는 것을 행복해 할 줄 아는 우리이기에 앞으로 시간들을 기대하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목동 교보의 illy는 맛보다는 서점 안에 있는 그 분위기.. 하늘, 사자머리와 만나다 쉬는 날, 인라인스케이트를 들고 나와 바닷바람을 즐기던 곳 가끔씩 만나는 부서진 도로를 피하며 차도로 달리는 것을 제외하면 나름 내달리기 좋은 곳이었다. 사자머리가 내려보는 이 길... 해변가를 끼고 또 반대쪽에는 피서철에 열리는 다양한 호텔들을 지나치는... 그렇게 달리면 더이상 달릴 수 없는 오르막길을 만난다. 그곳에서 멈춰서서 한참을 기다리면 서쪽 바다로 가라앉는 붉은 태양을 만날 수 있다. 2008 MK CAMP 캐릭터 "바울" 갑작스레 플랜카드 부탁을 받고, 작년 디자인을 거의 모방해서 진행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작년 디자인에 들어있는 캐릭터 "다윗"이었습니다. 작년 주제는 "예배자 다윗..." 그래서 바울 캐릭터를 즉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Paul' story" 선교를 주제로 한 이야기는 바울의 회심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설픈 그림으로 그 모든 걸 담을 수 없어서 고민했습니다. 그때 빌립보서 3장의 구절들이 떠올랐습니다. 바울하면 끝까지 경주하는 이미지, 그리스도의 복음에 충성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달려갈 길을 마친"(딤후 4:7)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로마를 향하여 달리는 바울의 이미지로 결정해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것이.. 하늘, 밝히다 세상은 밝으면 밝을 수록 깊어지는 어두움이 있다. 세상은 밝으면 밝을 수록 눈이 부셔 볼 수 없다. 세상은 밝으면 밝을 수록 그늘을 찾아 나선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테이블 마운틴에서 하늘, 물들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뒤로하고 하늘이 얼굴을 내밀더니 이내 붉은 노을빛을 살포시 비춰주었다. 그런데 살포시 비치던 노을은 어느새 하늘을 점령하였다. 200년 봄으로 접어들던 케이프타운 그곳에 가고 싶다. 남아공 케이프타운 밑 컥베이 파란 바다위에 하얀 파도가 부서지고 사이 사이 비집어 먹이를 집어내는 갈메기가 있는 그곳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서퍼들 두껍고 긴 낚싯대와 씨름하던 낚시꾼들 한쪽에서 모래성을 쌓는 엄마와 아이 흑이건 백이건 목적지로 싣고 나르는 바닷가 철길 바닷가로 오고가는 노란 전동차 역을 배경삼아 바다에 발담가 서 있는 레스토랑 너희들이 있는 그곳에 가고 싶다. MKBN 준비모임 공지안내 제 개인 블로그를 광고를 쓰기는 처음입니다. ^^;; 아직 활발한 곳이 아니어서 그냥 씁니다. 지도 확인하시고, 다시 말씀드리지만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근 유료주차장을 사용하셔야 하니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사랑의 교회와 관계가 있으시면... 도움을 받으셔도 될 듯... 장소를 예약한 관계로 3시에 정확히 시작합니다. 모임 관련 자료를 첨부합니다. 확인하시고 다운받으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장소: 토즈 강남점(MKBN으로 예약) 일시: 7월 8일(화) 오후 3시~ 그리움이 쌓인 그곳 가끔 '낯선 한국'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때가 있다. 한국인이며 한국에 살면서 내가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잠깐의 외국 생활 속에서 어느새 내 안에 남아공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가끔씩 향수병에 눈물을 흘리며 그곳의 친구들이 매우 그리워지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남아공에서의 3년은 선교사로서 살아간 시간보다 '나' 방준범을 찾았던 시간이어서일까?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다. 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전하면 그들은 나의 어색한 콩그리쉬 영어를 귀기울여주곤 했다. 그들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 보다 그들의 내 영어를 들어주는 그 진지함이 오히려 나에게 기쁨이 되었던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한국에서 억눌렸던 자아를 처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곳의 친구들은 언제나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었다... 이전 1 ··· 73 74 75 76 77 78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