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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삐뚤어진 내 생각때문일 뿐이야. 음?

연구논문 몇 개 보다가 좀 의아했던 글.

예컨대, “부모가 현지 선교에 집중하는 동안 자녀는 현지인 교회학교에 다니거나, 부모가 출석하는 교회를 따라가 예배드리는 수준에 그친다”는 서술이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2020년 무렵 발표된 논문에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 발표된 정황을 그대로 반영하여 인용한 것이었다. 무려 20년이 지났고, 그 사이 한국 선교의 양상도, 현장의 현실도 분명히 달라졌을 텐데, 그 변화에 대한 검토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그냥 “선교사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여전히 빈곤하다”는 결론을 밀어붙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실제 현장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보다는, 연구자의 감정과 머리에서 그려진 것에 고착된 것처럼. 이런 식의 논문을 MK 연구에서 가끔 마주하게 된다.

"선교사 자녀들 가운데는 타문화의 적응과정에서 생기는 정체성 혼란이나 감정적 변화, 신앙적인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선교사의 중도 사역 포기, 도시 중심의 사역 편중, 선교 재정의 전략적인 지출 부족 현상 등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선교사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내적강화, 즉 신앙발달을 통해서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이런 주장을 보면, 한국 개신교의 민낯이 오히려 잘 드러나는 건 아닐까 싶다. 교회 사역들을 보면 늘 자금은 빠듯하고, 인건비나 프로그램 재료비는 형편없다. 그런데도 섭외대상자는 언제나 고퀄의 능력자, 그리고 그 비용은 대부분 ‘믿음’으로 지불하려 한다. 말하자면 힐러는 파티에 넣어주되, 물약과 장비는 각자 구매하라는 정도? 사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동체 안에서 그 가치를 따라서 서로의 자원을 아껴가며 달려가는 상황이라면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구조적 현실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돈은 못 주겠지만, 신앙으로 견뎌라”는 익숙한 메시지일지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삐딱하게 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런 글들은 현실에 대한 성찰보다는 이상론에 기대며 불편한 현실을 신앙으로 덮으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