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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애증의 복음주의, 이제 묻어야 할 때인가?

우리집 데크가 삐걱거린다. 이걸 살릴 생각을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썩은부분을 도려낸들, 이미 지지하던 곳들과 체결부들이 뭉그러졌으니까. 그 전에 손을 봤으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거다. 그러나 망가지는 걸 보면서 다른 망가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것에 안주하면, 다른 체결부나 목재의 조직들이 부하를 그만큼 더 받게 된다. 그렇게 망가지면 다 뜯어내야 한다. 

작년 로잔대회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이건 망했네.' 

(그러니까 지금으로로부터 10년전 복음주의운동의 강연을 들었던 것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 운동 강좌 3강을 듣고.

오늘 3강은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운동의 분화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1960년대 영미권 복음주의 진영의 분화가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는 점이었는데, 미국의 퓰러신학교에

barny.tistory.com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왜 WCC는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걸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개방성? 아니다. 거기선 구지 위선을 떨지 않아도 될만큼의 여백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말은 복음주의자들은 공적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과 뒷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의 수위가 꽤 크다. 신대원 수업에서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은 교수의 발언 범위가 교단의 신학적 범주, 그것도 보수적인 범주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당시 내가 들었던 건 교수 강의를 녹음해서 목사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를 빤쑤사건의 그 교단 뿐만 아니라 미국침례교단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부터 교단 신학을 (교수님들께는 죄송하지만) 궤변신학 정도로 생각하게 된 듯 싶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꼬리에 꼬리를 물듯 하게 되었다. 그렇게 짤린 교수들도 있고, 최근 모 교수처럼 생명을 근근이 이어가는 분도 계신다. 나는 그들 모두의 사정과 그 결정을 존중한다. 단지 그 신학이 하찮아질 뿐이고, 그들의 발언에 신학적 신뢰감을 상실하는 그저 밥벌어먹는 교수일 뿐이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단지 학풍(!)으로만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아닐 것이다. 다만 신학이라는 학문은 정치적 해석학에 불과할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 교수들의 윤리성이나 신학적 정체성을 논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의 선택에는 내가 감히 판단할 수 없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얽혀있으니까. 단지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대결구도가 이런 형태로 끝나는 거 같다는 생각에서, 집돌이 가사가 주업인 시한부 교육목사가 부업인 하찮은 일개 성도가, 기일게 오늘 아침의 생각을 가감없이 써 본 것이다. 그나저나 장마끝나면 데크 수리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