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언덕 위에 서 있는 신전들과 공공시설들이었다. 베르가마에서 만난 페르가몬(버가모)은 처음으로 폴리스의 의미와 그 범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대학 시절 고전 건축을 배울 때 기억나는 건 기둥머리 양식 정도였지만, 현장에 서 보니 내 눈은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교과서에는 거대한 신전과 극장의 평면도, 정교하게 조각된 보와 기둥 사진, 그리고 양식에 대한 설명이 가득했지만, 실제로 발굴지 위에 서면 올리브 농장, 양떼, 농부들의 집과 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은 곧장 폴리스로 이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폴리스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신들의 거처, 신과 가까운 귀족과 관리자들의 자리, 공공의 만남터였다. 그러나 평면도에는 없는 이야기―골목에서 이어졌을 남자들의 수다는 시민권을 가진 자들의 것이었지, 하루 종일 목축과 농업에 매달린 이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장면을 떠올리니, 사도 바울과 예수의 제자들이 어떤 길을 걸으며 어디서 모였을지 상상하게 되었다.
페르가몬의 제우스 신전은 한눈에 들어왔다. 열주와 회랑은 다른 지역보다 크지 않았지만, 평지를 굽어보는 제우스의 자리는 도시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황제를 숭배하는 제국의 위용으로 변모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가파른 경사의 극장이 있었다. 아침, 사람 없는 무대에서 “산타루치아”를 불렀을 때, 근처의 이탈리아 관광객이 박수를 보냈다. 이어 “아리랑”과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부르니 극장의 그림자 아래에서만 가능한 작은 해프닝이 되었다. 언덕과 올리브 나무들이 펼쳐진 풍경 속에서,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계급과 권력에 의해 나뉘던 일상의 무대였음을 실감했다.





도시는 무엇인가? 서울에서 살 때는 편의와 문화, 정보가 모이는 곳으로 여겼다. 시골에서 살아보니 ‘도시’는 새련됨과 우월감, 그리고 흙먼지를 밟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그리스-로마의 도시 역시 그랬다. 포장된 도로, 배려된 건축의 그늘, 산바람이 스쳐가는 회랑은 거니는 사람들을 붙들고 열띈 토론으로 뒤섞인 소란스러움, 곧 ‘도시적 삶’을 상징했다. 오늘날 카페처럼 기능한 사르디스의 김나지움에 달라붙은 작은 방들처럼, 고대 도시의 흔적은 지금도 낯익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결국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걸까? 그럼에도 도시라는 건 폴리스처럼, 인생의 숭배 그 중심이고, 권력을 탐하면서도 권력을 부정하며, 민주적이지만 선동적이며, 인간미를 추구하지만 언제나 자연미에 매달리는 모순과 애증이 아닐까 싶다.



신과 가까운 자리에 세워진 폴리스는 세계관을 지배하고, 필요를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신전, 공공시설, 상공회의소, 그리고 상하수도까지―이곳은 당대의 기술과 자본이 집적된 유토피아였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들은 과시와 자본, 힘과 배타성의 무대이기도 했다. 히에라폴리스의 북문 밖 무덤들은 부와 권력으로 사후의 안식을 살 수 있다고 믿은 자들의 흔적이고, 플루토니온 동굴은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사르디스는 황금의 도시였고, 최초의 금화가 태어난 곳이다. 라오디게아는 지진에도 제국의 도움 없이 재건할 만큼 부유했으며,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바다와 내륙을 연결하는 부와 권력의 회랑이었다. 폴리스는 우월감과 과시, 그리고 지배적이다.






이렇듯 도시는 자랑과 과시로 가득했다. 낯선 이방인은 거대한 성문 앞에서 검문을 받아야 했고, 때로는 치부를 드러내야만 입성할 수 있었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속담처럼, 도시는 인간의 욕망과 기만을 집약한 곳이었다. 그리고 찬란하게 찬양하던 시민 세계는 결국 황제를 수호하는 체제아래에 복종했다.


그러나 도시는 사라지고, 신전은 무너져 돌무덤이 되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사람 없는 회랑과 도마뱀, 그리고 고양이들뿐이었다. 하지만 산 아래의 마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베르가마의 월요 장터는 오늘도 소란했고, 포도송이는 여전히 달았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올리브 잎사귀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산 위의 신전은 무너졌지만,
산 아래의 마을은 여전히 숨을 쉰다.
장터의 소란과 포도의 달콤함,
올리브 잎의 은빛 속삭임.
결국 이어지는 것은
권력의 성채가 아니라
흙을 딛고 살아가는 삶의 숨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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