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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 학술 소모임 (feat. MKBEAM)

TCK 관련 연구에서 궁금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물어물어 가다가, 조그만 그룹 스터디 비슷한 미팅을 어제(2023.4.24) 가졌다. 물론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모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기에 최대한 내 톤을 낮추고, 전수정 쌤의 연구를 들을 수 있었다. 

주제는 선교사자녀의 자율성에 관한 것으로 한국 사회와 교육 안에서 이슈가 된 수동성에 대한 선교사자녀판이라 할까? 보내준 글에서 가졌던 의문들을 설명을 통해 좀 더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코헛의 '자기심리'에 대하여 논문 인용만을 보았다면, 좀 더 구체적인 이론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자율성이 자기 만능과 성실성이 아니라 의존, 과정, 성취 등에서의 균형, 조율이라는 정의가 인상적이었다. 근대사회의 개인화가 심화되어 자기분열, 다층적인 형태로 분화되는 시대에서 관계와 연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의견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면, 현상의 관찰을 통해서 다시금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첫 단추를 맺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주제는 선교사자녀에게만 국한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선교지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환경적 요인으로 고립과 단절의 상황을 의도치않게 경험하는 선교사와 그 자녀들 모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성 선교사와 자녀들 모두 경험하는 분리와 고립감은 부모의 기준과 가치 아래에서 자녀들의 수동성은 당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자녀들의 통제가 강한 아시아지역들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수동성은 기존의 미국과 서구사회 중심에서 관찰된 집단, TCK라는 개념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용이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담 전공자들의 첨언 속에서 자녀의 수동성을 넘어, 여성 선교사, 한국 사회, 아시아 TCK로 확장되었다. 연구자로 이번 발표를 한 전수정 선생님은 자신의 연구를 점검하고 다음 걸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허은영 선교사님은 박사과정에 대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었고, 유희주 교수님에게는 선교사 멤버케어와 여성선교사 돌봄에 관한 울타리를 넓혀가신 듯 싶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전수정 손생님은 본 연구에서 부모와 교육유형/환경이 MK자율성의 주요 요인이란 점을 주장하셨다. 이 부분은 황채영의 2019년 중국 역이주 청년들 연구에서도 동일하게 적응에 미치는 주요 영향을 부모와 교육환경으로 지적하고 있다.

황채영,"역이주 대학생들의 전략적 서사 : 중국의 이주 및 교육경험, 그리고 문화정체성을중심으로", 2019. 

 

리뷰] 재입국, 소속감에 목마른 TCK

황채영. "역이주 대학생들의 전략적 서사 : 중국의 이주 및 교육경험, 그리고 문화정체성을중심으로" , 2019. 서울 초록보기 더보기 이 연구는 부모와 동행하여 중국에서 성장기를 보낸 역이주 대

withtck.tistory.com

 

이 여정을 준비하면서 나의 궁금함이 하나의 모임으로 이뤄지는 과정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 하나는 나의 궁금함으로 누군가를 수고하게 하고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소심함이었고, 모두들의 만족을 채우지 못하면 어쩔까? 하는 불안감이었다. 40대 초반에는 이런 소심함과 불안감을 맡길 어른들이 있었기에 조바심과 불안감이 있었을지언정 내 생각으로 밀어칠 수 있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모임을 실패하면 내 사역 전반이 부정당하거나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감정이 몰아친다. 생각해보면 그런 불안감들의 무게가 부담되던 와중에 환경적 요인들로 감당했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건 아니었나 싶다. 부담없이 이야기를 앞뒤 가림없이, 상대의 위치를 고려하며 수위를 조절하지 않으며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수고를 할 수록 모임의 반경도 좁아지는 문제를 깨닫게 되면서 내가 느끼던 피로도가 생각보다 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튼 첫 모임을 뒤로하고 두번째 모임을 일정 예약없이 주제만을 정한채 마무리했다. 아니, 두 아이의 하교시간에 맞춰 서둘러 돌아와야 해서, 아쉽지만 세분과의 대화 자리에서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교차되는 감정 속에 두 아이와 저녁 메뉴를 결정하면서 오는 자리... 이런 낯설음에 약간의 서글픔,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왔을 선배 여성 선교사들에게 어렴풋한 동질감을 곱씹으며 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