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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일 오산리 아침

"힙"한 아침,

안개는 쉬이 물러가고. 힙한 아빠와 딸은 등교한다.

여느 가을 아침과 동일하게 가을걷이한 땅과 조그만 수로에는 백로와 물새들이 아침을 즐기고, 

나는 아침 평화의 브레이커. 

그렇게 힙하게 시작한 걸음은 시간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디 이 마을 뿐일까? 하면서도 오산리가 일본 식민지의 수탈 현장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 아내에게는 어릴적 할머니집에 대한 흔적으로, 나는 서울 생활의 흔적이었다. 양가적 감정! 시간은 단지 흘러갈 뿐만 아니라 시대의 이야기, 감정을 고스란히 묻혀서 오늘을 스쳐지나가게 한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100년이 넘게 철마가 달렸던 철길은 한국 근대사의 희노애락을 안고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일주일도 철길은 뜯겨져 고철이 되었다. 인기척이 사라진 철길에는 어느새 대지를 휘감는 가시풀들이 스물스물 저그의 점막처럼 점령하면서 다가오는 사람의 걸음에 묻어 그 영역을 넓혀간다.

참고. 군산선은 1912년 3월 6일 이리와 군산 사이 23.1km를 연결하여 세워진 기찻길로, 일본의 식량 수탈을 목적으로 하였다. 2020년 12월 10일, 군산항선의 이전으로 폐기되었으며, 내 살던 2021년에 그 흔적도 사라졌다. 오산리역은 1931년 6월 15일에 간이역으로 개통되었다. 

이곳이 한국 근대사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흔적은 이렇게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이 역시도 어딘가로 뽑혀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한 마을의 이야기는 숨쉬고 있는데, 왠지 서글퍼지는 느낌은 조그만 마을의 흥망성쇠와 이어져 있기 때문일까? 각자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 왔을 지시석이나 안내판은 빠르게 바뀌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게 2km의 아침 산책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