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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담론의 한계, 근데 왜들 그리...

기본적으로 나는 결혼에 대하여 보수적이고, 젠더에 있어서도 보수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여러 양상들과 현상에 대해서 반대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납득할만한 것들 없이 덮어놓고, 맞고 틀린 건 아니다라는게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성경적으로 보수적이면 모든게 보수라고 생각하지만, 내 관찰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항상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게 유동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의견과 양상, 생각과 주장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또 누구와 이야기하는지에 따라서 강도와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표현하는 것과 감춘 것 사이에도 우리는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배운바로는 이것을 마이크로컬처라고 하는데, 단지 미시적인 영역의 집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층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 또 집단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점, 더 나아가 개인 내부에서의 인식도 그 강도와 내용에 있어 다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나는 세대 담론을 신뢰하지 않는다. 경제적 자유주의와 능력중심이라는 키워드는 어떤 측면에서의 주장이지, 그 내부에 들어가서 물어보면 사회주의적 측면이나 보편주의들이 틈틈이 존재한다.   

나는 토론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토론이 우리의 생각을 바꿀꺼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인으로 우리의 정서 내부에는 감정적 동질성이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서 감정적인 동감과 뒤틀림 사이에서 우리의 사고나 주장은 뉘앙스의 차이만큼부터 거대한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게 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제적 가치에 반응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모두가 명예나 도덕적 가치에 반응하지 않는다.

나야 세속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다. 단지 기독교 내부의 문제가 이 세대담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단화를 하는 측면에서 개개인의 입장을 한방에 뭉게버리는 능력들이 신기하고 또 참혹할 뿐이다. 여기에는 감정적 동질성과 더불어 신앙이라는 부분이 인지의 측면이 아닌 감정의 측면에서 자리하고, 그것에 대한 붕괴가 미치는 두려움이 큰 까닭이라 생각한다. 두려움은 언제나 있었는데, 학력이 그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는 듯 싶다. 그 측면에서 제자 요한에게 좀 따지고 싶긴 하다. 정말 그래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