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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2026년 7월 19일의 생각. 교회가 ...

매주 교회에서 사도행전 설교를 듣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이 헛헛하고 불편하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속 '예수가 그리스도이신가'를 둘러싸고, 수백 년간 축적된 유대교적 시스템과 메시아 운동이 부딪히며 생긴 그 고뇌와 분열의 다이나믹함 대신 "바울의 메시지에 반응했는가, 아니었는가"라는 이분법으로 성도들의 태도에 다가선다. 그리고 "오늘 선포되는 목사의 설교에 반응하는가, 하지 않는가"로 앙상하게 귀결되며, 나같이 의심하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경고한다(고 들린다). 

바울 신학에 대한 불편함을 뒤로하고라도, 사도행전이 갖는 현장의 역동성은 현재의 교회에게 여러가지로 좋은 고민이 될텐데, 이리도 평탄화하여 성도를 향한 교훈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적절할까? 싶다. 성경에 대한 초대교회와도 같은 반응이 없는 건, 애초에 초대교회도 아닐뿐더러 공유되지도 않는 목회자, 또는 열성자들이 바라는 그 꿈이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건 목사 혼자든 목회팀이든 그들만의 부족때문이 아닐텐데...

그렇게 찜찜한 뒷맛을 안고 카페에서 작업을 하는데, 건너편에서 목장 리더 한 분이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토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기도 깊이 있고 재미있는 나눔을 하고 싶은데, 목원들이 자녀들의 이야기로 돌아가한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게 힘들다고. 자기도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토로였다. (바로 그 이전 예배에서 목장예배에 대한 간증이 있었던 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교회에서 자신을 내어주며 리더로 섬기는 이들에게 유독 크게 나타나는 결핍이다. 아니 결핍이라 느끼는 현상일지 모른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지났고, 그 욕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틀린건 아닐 것이다. 다만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 안에 일상의 삶보다 더 우월하고 거룩한 신앙의 무언가가 따로 있는 프레임이 존재하고 있다는 의심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요즘 내가 깊이 고민하는 것이 일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가'에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은연중에 일상의 폄하와 그 일상 속 하나님의 부재를 교회 안에서 꾸준히 학습받아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세속화된 세계 속에서 하나님이 거세되어 버린 걸?, 혹은 그렇게 느끼도록 우리가 길들여진 것일까?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견뎌내는 성도들의 소소한 일상 한복판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어떤 거룩한 선포보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성전이라는 점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