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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시스템에 매몰된 인간, 믿음

사람보다 시스템에 관심있는 관리자들 아래 있게 되면 기계적으로 변질되는 내면을 보게 된다. 
나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교회와 사회의 이야기다. 유지에 관심이 있다보니 법의 취지보다 법문 자체로, 시스템의 의미보다 시스템 그자체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운데 그 속에 있는 이들은 그 시스템이 다른 변화를 도입하려할 때마다 저항을 느낀다. 그리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힘을 가한다. 

영화 메트릭스에 종속된 인간들과 다른 뉘앙스일지 몰라도 시스템에 저항하여 본질과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시스템과 시스템의 사람들에 의해 저항받고 상처를 주는 것은 비슷하다. 사실 무엇이 좋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핵심은 "믿음"일텐데 그 속에서 교회가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이르시기까지 당시에 깨뜨리셨던 것이 무엇인지 본다면... 알 것이라 믿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걸까?

Facebook. 2011. 9. 14.

교회가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믿음"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들이 살아내는 삶의 실제와 말하는 "믿음"이 다를 때 그 믿음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였다.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자기가 주장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여 줄 것을 외쳐대는 가운데 문득 어느 누가 그들의 이야기에 다리가 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였다.
무엇보다 주장하는 이들이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현상을 유지하는 것과 과거의 살아온 삶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태도, 일종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교회의 정치 참여, 교회와 정부 사이의 밀월관계, 교회의 사회적 영향, 유교적 질서 등등

한국 사회가 이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은 적어도 "경제 성장"이라는 주제가 가장 짙은 혐의를 받을 것이다. 그동안 이를 위해 희생한 것이 바로 그런 가치와 믿음에 대한 진통이었으니까. 일방적인 태도로 강요된 교육과 가치관, 그리고 이데올르기까지... 나 역시 그의 수혜를 받았던 이로 이런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믿고 행하는 것에 모순도 따를 것이고.
적어도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있어서 삶과 정신의 따로국밥에 대한 모순을 안고서, 현재에 발휘되는 시스템과 그에 대한 비인간성을 고발하며 시스템을 변혁시키려는 운동 속에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 내 임무인지 모르겠다. (불교용어 "업보"라는 것이 딱 맞는 표현일지도...)
그 속에서 살아내셨고 변혁의 주체가 되셨던 2000년전 예수님처럼 말이다. 예수님과 비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분을 따르겠다는 무리에겐 그 변혁의 속에서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 고백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고백하며 살아냈던 곳이 2000년전 초대교회였고, 오늘의 우리에게 "교회"라 불리우는 공동체의 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