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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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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교사 평가에 대한 단상 어제, 그러니까 2019. 7. 19. 낮에 요도 어딘가에 걸린 돌을 묵상(?)하다가 최근 어떤 일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연결되어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다. 읽어가니 몇가지 문법적으로 수정할 부분이 있겠지만 그당시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수정없이 올려본다. 선교지에서의 갈등과 선교사 평가는 항상 한쪽의 이야기에서 판가름낼 수 없다. 특별히 사건과 관련된 경우, 누적된 정황들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라는 것이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따라 논의가 다르고, 앞서 있었던 상관관계가 있는 사건들 가운데 무엇과 인과관계로 묶을 것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는 점에서 특정 편의 이야기들은 주로 그런 인과관계의 연속성에 따라 갈라진다. 또 하나는 누구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건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선교사 멤버케어는 사회적 맥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작 2013년 11월 25일 선교사 가정에 대한 책무 관련 발표회가 온누리 교회에서 있었다. 기독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한국 선교사 멤버케어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들을 나열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만 여명의 한국 선교사들과 이들을 보낸 한국 교회는 멤버케어라는 주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물론 서구에 비해 한국 선교 역사는 매우 짧기 때문에 멤버케어의 미성숙함을 단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가 근본적으로 멤버케어를 접근하는 방식과 이해에 있어서는 불편하다. 멤버케어의 함의와 정신보다는 기능적인 접근과 문제 해결에 관심이 높고, 멤버케어가 한국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