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하는 아이들의 경험을 설명해 온 #TCK #제3문화아이들 논의에서 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4판 저자들이 소개하는 '교차문화적 상실'은 지리적 이동이 없는 #CCK 에게도 문화 차이에서 오는 상실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동하는 아이들에게서 주목했던 현상을 정주하는 아이들의 삶에서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CCK는 원래 이동을 필수 조건으로 삼지 않으니, 정의상 모순은 아니다. 그래도 이동하지 않아도 상실을 경험한다면, 이동성은 무엇을 따로 설명해 주는가. 핵심은 이동인가,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경험인가.
나는 이것을 이론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출발점에 대한 되물음으로 읽는다. 더 많은 삶을 설명하게 된 만큼, 처음 중심에 두었던 이동성의 역할도 다시 살펴야 한다. 저자들도 아직 소개 단계이며 더 연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게는 그 확장과 되물음이 함께 보인다. 어쩌면... 단정하긴 어렵지만... TCK라는 현상은 일종의 20세기 근대화 과정의 페노메논이 아닐까?
덧. 책은 2026년 10월 6일 출간되었다. 조만간 번역좀 해볼까 생각 중. 논문이나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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