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Seoul)과 소울(soul). 발음이 비슷하다고 서울시가 스스로 가져다 붙인 이름 ‘Soul of Asia’.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외려 ‘Souless of Asia’가 떠올랐다. 서울 어디에 ‘영혼’이 있을까. 개발이란 이름 아래 도시의 기억을 지워내는 도시, 구석구석 불도저로 밀어낸 후 네모 반듯한 아파트를 채우는 습관, 몇 년 지나면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터를 갈아내는 수도 서울. 재산 증식과 생존의 굴레 속에 서울 시민들은 도시 안을 끊임없이 ‘유랑’한다. 지금의 서울에 영혼은 없다. ‘이게 아니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 어떻게’는 모르겠다. 답을 구하고자 건축가 승효상 선생에게 찾아갔다. 승효상은 한국 건축가들을 비판했고 한국 건축문화를 슬퍼했다. 그런 다음 주거문화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민국 대표건축가. 종합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검박하고 조화로운 건축관 ‘빈자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수백당, 수졸당, 웰콤시티 등을 건축했으며,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해 2002년 미국 건축가 협회 명예 펠로우가 됐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주관하는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엔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 건축 책임을 맡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학내일(이하 내일) 요즘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원래 꿈이 건축가여서 건축 전공을 택한 이들은 드뭅니다.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승효상(이하 승) 저도 건축가를 생각하진 않았어요. 미술을 하고 싶기도 했고 신학을 하려는 마음도 있었고. 그러다가 누님의 권유로 건축과로 가게 됐지요.
내일 대학시절은 어땠나요? 승 우리 대학교 때는 유신 시절이라서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시위 때문에 학교가 늘 휴학이었으니까. 수업을 들은 기억은 별로 없어요. 전 그냥 독학을 했죠. 교재도 제대로 된 게 없었으니까 여러 가지 책들을 봤죠. 건축학 책도 읽고 인문학 책도 읽고. 내일 원래 건축학과에서 그렇게 인문학 공부를 하는가요? 승 안 합니다. 전혀 안 하는데 그게 잘못된 거죠. 건축이라고 하는 건 삶에 관한 일을 하는 겁니다. 인문적인 일을 하는 게 건축인데 건축학과에서 인문학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정말 잘못된 거죠.
내일 선생님이 인정하시든 안 하시든 지금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로 불립니다. 당시에도 건축학과 학생이 적지 않았을 텐데 다른 건축학도들과 뭐가 달랐기에 지금 이런 건축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승 흠...다른 학생들은 제도 안에서 포함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전 뭐 제도권과 불편하게 지내니까. 내 길을 가려 했던 거고. 내일 그때부터 어떤 건축가가 돼야겠다는 상이 잡혀 있던 건가요? 승 아뇨 그렇진 않았어요. 막연했죠. 일단 아무도 건축이 뭔지 안 가르쳐주니까 건축이 뭔지 알고 나야 그만둘 것 아니겠어요. 학교 다니는 내내 그리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놓지 않았어요. 그게 아마 다른 건축학도들과 달랐다면 달랐을 거예요.
내일 건축가로의 진로가 확실하지 않았는데도, 대학원에 유학까지 계속 건축 공부를 하셨군요. 승 그때는 건축이냐 시위냐 두 가지 선택밖에 없었어요. 2가지가 다 절대적인 일인데, 나는 어떻게 하다가 건축을 하기로 했으니 세상과 절연하고 지내는 거죠. 세상과 인연이 있으면 시위현장으로 나가야 하니까요. 그게 나를 건축하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내일 거리에서 시위하는 분들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셨던 건가요? 승 책임감이라...책임감이라기보단 강박관념이라는 게 좋겠네요. ‘사회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사람들도 있는데, 제가 제 시간을 함부로 헛되이 쓰면 안 되겠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나도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서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습니다. 내일 졸업하고 나서 바로 김수근 선생님 문하에 들어가셨죠? 김수근 선생님 밑에서 12년 있었고 그 후에 ‘공간’ 대표도 3년 맡으셨습니다. 20대부터 30대까지 사람이 가장 뭘 많이 배울 시기에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낸 셈이군요. 김수근 선생님에게 어떤 것을 배우셨나요? 승 건축에 대해서 처음으로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니까. 건축가로서의 태도와 삶. 건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실마리를 잡게 해주셨죠. 예컨대 ‘건축가는 건축주의 시녀가 아니다’ ‘건축가라고 하는 것은 문화 창조를 겸유한 파트론(후원자)으로 살아야 한다’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건축가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내일 김수근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힘든 시기를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승 ‘공간’이란 집단의 법적 대표로 지낸 3년이 상당히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김수근 선생님이 빚을 한 30억 남겨놓고 가셨어요. 89년도에 30억이란 돈은 어마어마한 겁니다. 지금도 30억이란 돈에 감이 없는데 그때라고 감이 있을 리 없고 얼마나 큰돈인 줄도 모르고 맡은 거예요.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느 정도 빚은 해결했어요. 도망갈 구멍이 보일 때 도망나왔죠.(웃음) 홀가분했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은 순수한 백수 상태였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제 더 이상 김수근 건축을 할 수 없으니 새로이 승효상 건축을 만들어나가야 했죠. 내일 ‘승효상’하면 떠오르는 ‘빈자의 미학’은 그때 생각하신 건가요? 승‘공간’을 나온 게 89년도고 ‘빈자의 미학’이란 말을 만든 게 92년도입니다. 3년 동안 승효상 건축을 만든다고 골몰을 했죠. 책도 다시 읽고, 여행도 다니고,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듣고, 동료들과 논쟁도 하고. 내일 생활은 괜찮으셨는지요? 3년이 본인에겐 배우고 하니까 좋을 수 있겠지만 가족분들은 힘든 시간일 수도 있지않습니까? 승 고생이야 뭐 3년뿐이 아닙니다. 그전에 15년을 그렇게 살았으니까. 제가 그렇게 집에 돈을 많이 가져오는 사람이 아니란 건 아내가 옛날부터 알았으니까요.(웃음)
내일 건축에 문외한인 독자들이 많으니 어떤 고민에서 ‘빈자의 미학’이 나왔는지 그 내용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승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우리 사회는 불신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문제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고, 건축가라면 건축을 통해서 문제에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건축의 공공성,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건축. 불신의 시대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빈자의 미학’을 내놓은 거죠.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미학이 아니고 가난할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한 미학입니다. 자기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돈대로 살지 말고 절제하고 검박하게 살 때 더 행복하고 아름답다는 미학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보다 더 높은 집을 지을 수 있어도 옆집만큼만 짓고, 앞집보다 화려하게 지을 돈이 있어도 앞집하고 어울리게 짓고, 지나가는 시민에게 공간도 내어주는 건축을 하면 공동체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지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내일 그렇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사무실을 운영하시면 고객을 대하기가 쉽지 않았겠습니다.
승 전 건축물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고 집을 짓더라도 집을 사용할 권리만 받는 거지 건축물은 시민들의 소유거든요, 왜냐하면 그 건축과 함께 사는 시민들이 건축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거든요. 찾아온 건축주에게 ‘이 집은 당신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화를 내죠. ‘내 돈으로 내 집 짓는데 무슨 소리냐.’ 그런 사람들은 건축의 공공적 가치를 도외시하기 쉬우니까 그런 집은 설계를 잘 안 해주죠. 내일 처음부터 그렇게 가려 받아도 일거리가 충분히 있었나요? 승 처음엔 뭐 일거리가 있겠어요? 드문드문 들어왔죠. 그래도 뭐 동의해주는 사람이 100명 중에 한두 명은 있었지요, 그렇게 오기 시작하면 또 내 뜻에 동의하는 사람이 찾아오는 거고. 굶는 것은 워낙 익숙하기 때문에.(웃음) 내일 굶는 재주도 건축가의 중요한 덕목일 수 있겠습니다. 승 물론입니다. 건축관을 정립하려는 젊은 친구들에게 말하죠. 5년 굶을 수 있는 자신이 있든가, 10년을 먹을 돈이 있든가.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일 쓰신 글이나 하신 말씀 중에 남이 듣기에 아플 것들이 많습니다. 광화문 광장 보고는 ‘커다란 중앙분리대’라고 하셨고. 이렇다 보면 선생님에 대한 비난도 있을 것 같은데? 승 굉장히 많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한 게 틀린 얘기가 아니니까 제가 아직 살아있는 거겠죠. 내일 직접 이름을 거명해놓으시진 않았지만 읽다 보면 특정 사례가 쉽게 떠오르더군요.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커다란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외국 건축가들을 불러들여 생뚱맞은 것들을 뚝딱 세워둔다고 저서에 쓰셨던데, 그걸 읽고 있으니 동대문운동장을 대체할 자하 하디드의 ‘환유의 풍경’도 생각나고, 청계천의 상징물 ‘스프링’도 떠오르고. 실제 그 이야기를 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승 그건 제가 글을 잘 쓴 거네요.(웃음)
내일 52년생이시니까 대한민국이란 땅에서 건축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를 쭉 봐오셨겠습니다. 대한민국 건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승 개판이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건축량이 많은 나라입니다. 중국이 집 많이 짓는다고 하지만 밀도로 따지면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도시도 이렇게 많은 신도시를 건설한 나라가 세상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건축에서 한국 건축이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게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거든요. 세계 건축을 논할 때 아무도 한국의 현대 건축을 이야기하지 않아요. 한국의 건축 시장은 외국 건축가들의 봉이 된 지 오래됐고, 한국 건축가들은 외국 건축가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지 또 오래됐고. 젊은 건축가들이 자기 신념을 지켜가면서 건축의 본질에 대해 탐구해야 할 건데 자꾸 외국 건축가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하수인 노릇을 하다가 기회가 되면 외국 건축가들 쓰다남은 껍데기를 가지고 건축행위하고 이러니까 건축가가 건축주의 시녀로 전락하는 겁니다. 한국 건축계에서 좋은 건축가를 뽑으려면 20명을 뽑기가 힘들어요. 이건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건축이라는 것 국가적으로 시대적으로 중요한 문화적 자산인데 건축을 발동하는 기관이나 단체, 개인들이 건축을 그냥 치부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자기 업적을 올리는 쇼 비즈니스로 생각하잖아요. 본질적인 것에 대해서 이해가 없어요. 그러니까 건축가를 키우려고 하지도 않고 좋은 건축가가 나오지 않으니 한국 건축은 계속 나쁜 상태고, 총체적으로 문제인 거죠.
내일 대안이 있나요? 승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일거리가 없어져야 합니다. 건축시장이 광풍을 멈춰야 해요. 예전에 흥청망청했을 때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져서 속으로 ‘아 이게 10년만 갔으면 좋겠다’했더니 2~3년 지나니까 뚝딱뚝딱 또 지나가고, 이번에도 금융위기 터졌는데 이것도 뭐 해결되는 추세고. 일거리가 없어져야 건축가들이 자기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일거리가 많으니까 일단 그거 해치운다고 뭘 생각하질 않습니다. 런던에 가보면 일거리가 없어서 건축가들이 일거리 하나 따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조그만 벤치 하나를 설계해도 여기에 들뢰즈니 온갖 이론을 이야기하며 설명해요. 그만큼 진지하단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뭐 20층짜리 빌딩을 지으려도 ‘돈 나와라 뚝딱’하며 아무 생각 없이 건물을 만드니까 여기서 무슨 담론이 생기고, 철학이 생기고, 미학이 생기겠습니까. 일거리 많으니까 건축가들이 전부 비즈니스하려고, 골프 치러 다니고 협상하러 다니고 그런 거죠.
내일 이제 건축가가 아닌 집을 갖고 싶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저도 이제 집을 사려고 하는데 걱정이 태산입니다. 임대할 수도 있다지만 전세금이 빨리 오를까 봐 걱정입니다. 승 그러니까 정부에서 시스템을 빨리 만들어줘야죠. 정부가 사람들을 ‘도시 유목민’처럼 만들고 있잖아요. 사람은 정주해야 하거든요. 하이데크가 ‘인간은 정주함으로 존재한다. 시적인 자만이 정주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정주해야 하는데, 이렇게 휘몰아치면서 살게 하니까 문제죠. 재개발한다고 다 쫓아 보내고 뉴타운 만든다고 다 쫓아 보내고 터무늬(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뜻하는 승효상의 표현)를 다 지우고. 이런 주거문화라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은 삶이 단편적으로 변합니다. 이 정부가 건축문화에 관해서는 완전히 백지예요. 전혀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고 있으니. 참.
내일 좋은 건축은 건축가만이 아닌 일반인들의 동의가 있을 때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주거문화에 대해서 보통 대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십시오. 승 건축이라는 건 자기 삶 자체예요.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건 자기 거주 형태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건물이 아니고, 건물에 들어 있는 삶 자체를 건축이라고 얘기합니다. 자기 사는 모습이 건축이라는 말입니다. 자기 삶을 가치있게 하려면 자기가 거주하는 공간을 가치있게 만드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건 화려하거나 세련된 것과는 관계없습니다. 그 공간이 얼마나 생산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느냐는 게 본질입니다. 건축은 건축가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건축가는 도와주는 겁니다. 건축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죠. 건축은 공간으로 구축은 되지만 시간으로 완성됩니다. 완성은 거주인의 몫이죠. 자기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학생들이 그런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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