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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조선일보20100216] '컴퓨터 활용 영어수업의 달인' 면목고 송형호 교사

 꼴찌도 공부하게 만드는‘영어수업의 달인’전교조 조합원 송형호 교사는“비결은 아이들이‘수업의 주인’이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디지털로 소통하니 '문제아'가 없더라
해직했다 돌아오니 '교실 붕괴'
"수업 때 딴 짓 아이들 살리자"
동영상 교육에 채팅하며 대화
꼴찌·반항아들 눈빛 초롱초롱

"숙제 안해왔다고 혼내기보다, 시간을 들여서 아이들이 제출한 숙제 결과물을 수업에 활용해보세요. 자존감(自尊感)만 살려주면 아이들도 변합니다."

설날 연휴 직전인 11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북중학교 2층 도서실에서는 이 학교 교사 30여명이 나와 '수업'을 받고 있었다. 강사인 면목고 송형호(50) 교사가 큰 TV화면에 각종 동영상·사진을 띄워놓자, 교사들은 진지하게 메모하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겨울방학 동안 29차례나 외부 강의를 다닐 정도로 PC활용수업의 '달인(達人)'이지만, 사실 송 교사는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컴맹'에 평범한 교사였다.

◆교실붕괴…"아이들 '괴물' 같았다"

19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교단에서 쫓겨났던 송 교사는 우여곡절 끝에 1994년 복직했다. 하지만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학교는 예전의 학교가 아니었다. '교실 붕괴'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딱 5년 교단을 떠나 있었는데 그 사이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있더군요. 아이들은 아무리 혼내도 대꾸조차 하지 않았어요. 수업시간엔 다들 딴생각만 하고, '괴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자포자기'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대형TV를 보고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동료 교사들과 'PC활용 영어수업' 연구를 시작했다. 마침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공모전이 있었다. 2001년 2월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지만, 진짜 '기적'은 교실에서 일어났다. 수업시간에 컴퓨터가 활용되자, '괴물' 같던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재미있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소통방식이 다를 뿐 '문제아'는 없더라"

송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과서 컴퓨터 예습' 숙제를 내줬다. 번호 순으로 학생들에게 영어교과서 한 쪽씩을 나눠주고, 단어·내용을 컴퓨터를 이용해 맘껏 표현해오라고 했다.

한 학생이 컴퓨터로 'besides(게다가)'라는 단어를 배우 김태희씨의 서울대 학생증 위에 붙여 왔다. 송 교사가 이 그림파일을 화면에 띄우자, 교실 전체가 까르르 웃었다. 만든 학생은 "얼굴도 예쁜데 '게다가' 공부도 잘하잖아요"라고 했다.

어떤 학생은 동영상으로 영화의 한 장면을 찍어 왔다. 한 모범생은 교과서 단어들로 '가로세로 낱말 퍼즐'을 만들어왔다. 외국 사이트에 있는 채팅로봇 주소를 알려줬더니, 몇몇 학생들이 밤새 채팅로봇과 영어로 대화하다가 왔다고 했다. 아이들이 영어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송 교사는 "아이들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아이들은 디지털 세대로 변해 '소통 방식'이 바뀐 건데, 이걸 '문제아'로만 대하니 갈등만 커졌던 것"이라고 했다.

송 교사는 그 이후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학급운영 방식도 바꿨다. 첫 수업시간에 명함을 나눠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 그리고 '버디버디(십대가 많이 쓰는 인터넷 메신저)'와 'MSN메신저' 아이디를 알려준다. "영어문제든 생활고민이든 언제든지 질문하도록 해라"는 뜻이다.

수업교재는 학생들이 제출한 숙제를 활용해 매일매일 바꾼다. 물론 교재 준비 시간은 몇 배나 든다.

송 교사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자체 수업평가·담임평가'도 2003년부터 했다. 매년 수업 들어간 교실과 담임을 맡은 학급 학생들에게 20문항 내외의 설문지를 나눠주고 평가를 받는다.

"학생은 혼낼 대상이 아니라, 돌볼 대상입니다. '꼴찌'나 '반항아'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어요. 스스로를 존중하는 '자존감'을 키워주는 게 교사의 역할입니다."

20100216 조선일보 오현석 기자 soci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