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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book]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첫인상>>
책 제목이 신선했다. 그뿐이었다. 교회에서 '어린이 마당'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 기독교 교육에 대한 관심때문에 제목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첫 페이지를 훑어가는 순간 '이책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할만큼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글씨도 작다. 그리곤 한쪽에 처박아두고 '언젠가 읽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잊어버렸다. 
설에 내려가는 기차에서 읽을 책을 찾았다. 그리곤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지만 그 제목이 주었던 신선함은 사라진지 오래다.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충만할 뿐이었다.
저자인 조한혜정에 대해서 들은바 없었다. 출판사도 듣보잡이었다. 그래서 신뢰가 가지 않는 책이었지만 왠지 읽어야할 것같은 의무감은 지워지지 않았다. 교사도 아닌데...

과정>>
기차안에서 읽게 된 이 책은 '어? 이런 책이었어?'라고 생각할만큼 빨려갈 듯한 흡입력을 가졌다. 내가 '왜 던저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이야기, 다양한 청소년들의 이야기, 교육부(현 교과부)의 하자센터, 청소년 헌장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21세기로 넘어가는 20세기 끝자락의 세기말(?)적 분위기에 저자가 직접 현장에서 만나고 담아낸 이야기이다.
책은 의외로 쉬웠다. 그러나 씹기엔 걸리적 거리는 것이 많았다.

나에게 좋았던 점은...
1. 현재 한국 교육의 현실을 납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근대 모더니즘의 교육과 현재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에 대한 환경의 차이를 잘 설명해 주었다. 또 현재의 자본주의 속에서 교육의 위치를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2. 교실 붕괴라는 의미가 무엇을 말해주는 지 알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이 다르다는 것, 의사소통의 일부로 보기 시작했을 때 '교실붕괴'라는 단어 대신 의사소통의 '산고'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근대주의적 교육과 유교의 배경, 그리고 군사 문화가 아우러진 한국의 교육이 현재를 사는 아이들과의 충돌은 당연한 것었다.

3.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확실성으로 무장한 세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더니즘의 끝자락에 달랑거린채 대학하나만 바라보고 살아갔던 우리에게 대학은 마침표이자 시작점이었고, 해방구이자 병목현상의 현장이었다. IMF이후 과정을 통한 장미빛 미래는 사그라지고 오늘의 불안을 안고 중년을 맞이하고 있다. 어디서 잘못되었는지 알지 못한채...

4.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을 시키는 자의 입장이 아닌 교육을 받는 자의 입장으로 말이다. 누가 교육을 받는 이인지 또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5. 현재의 내가 가진 생각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내가 서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의 기독교인으로 교화의 대상으로 청소년을 바라본 시선이라던지 그들에 대하여 나의 경험치로 쉽게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그 과정을 몸으로 체험하는 시대에 있다는 것도 감사하다. 

 다만 기독교인으로서 본다면
1. 절대 기준을 가질 수 없이 현상에 대한 반응만을 해결책으로 삼는 것은 어렵다.
2. 사회의 목적이 현존하는 이들의 삶의 유지 또는 사회의 개선으로만 생각한다면 적절하겠지만 기독교적 이상은 분명 오리지널로의 회복에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한번 더 읽고 생각하며 이어갈 생각이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MK에 대한 생각도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가득하다.


http://book.naver.com/bookdb/today_book.nhn?bid=76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