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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10회 방콕 포럼 선언문을 읽고 생각해본 것들


먼저 방콕포럼이란...
‘방콕포럼’은 2004년 한국선교현장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만들어진 포럼입니다. 현재 2만명이 넘는 한국선교사들이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려가지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선교현장에서 제기되는 선교사역과 관련된 이슈들 중에서 개선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한 실천적이고 현장적인 해결책을 논의하기 위해, 현장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선교동원가, 지역교회목회자, 본부사역자 등이 매년 1회씩 정기적인 포럼을 갖고 그 결과를 현장에 적용하는 모임 입니다. 
선교한국 홈페이지에서 



방콕포럼의 10회 선언문을 읽고나서 개인적인 생각 특별히 MK 영역을 고려하여 남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한국 선교의 반성 속에는 기반 사역을 등한시했던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선교가 잘못 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걸었던 길을 반성하여 좀 더 건강한 선교를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만 이를 진단하는데 있어서 왜 기반 사역이 등한시 되었는지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여기에는 한국 개신교가 가졌던 종말적 세계관이 끼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지난 20세기 후반에 불었던 근본주의 성향의 선교운동도 한몫했고, 선교동원가들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선교사들의 양적 팽창을 자극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그런 자극을 반성하고 다양한 현상에 대한 신학적 고찰을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미치는 시대적 담론을 반드시 안고 가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아직도 교회=하나님 나라라는 도식이 반영된 신학관점이 편협적인 선교관으로 이어져 있으며 교단의 양적 팽창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판단은 결국 한국 교회의 이식과 더불어 임박한 종말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등한시 했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빈약하게 만들었던 사회적 기반은 현지의 양적 확장에 활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로잔언약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일련의 과정들(성장에 필요한 기반들을 만들고 세우는 것을 포함한)을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질적인 성숙함이 한국 교회와 선교 단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 동원에 있어 전략적인 필요가 있으며, 현장의 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장기적 계획의 수립과 필요를 가르쳐야 한다. 믿음이 전부라는 명제는 결코 무계획=하나님의 뜻이라 말하지 않는다. 또 주변인들에게 피해를 끼쳐 얻어낸 것을 마치 자신의 믿음의 결과인냥 떠드는 몰상식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서구 MK인프라에 민폐를 끼치고도 그것을 은혜와 믿음의 결과로 자랑하는 이들이나 그런 이들을 파송한 단체들을 볼 때마다 '선교사 자질'을 의심하곤 한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필드의 교육적 상황을 고려한 장기 계획과 지원 체계를 준비해야 하는데 '소명=빠른 파송'으로 이어져 준비과정에 필요한 시간들이 무시되었다.
그러므로 파송 교회의 자원과 선교현장에서의 교육 옵션을 고려한 지원체제를 계획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장의 교육적 상황이 한국 교회에 전달되고 기관들 간의 협조 속에서 한 개인, 교단의 프로젝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서 학교와 같은 규모의 프로젝트보다는 센터나 방과 후 학교와 같은 규모로 축소시키고 효율성 있는 협력 프로젝트로 전환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여기에는 공공의 자산을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고 유지할 것인지도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현지 국가나 교회에 기부체납형식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최근 치앙마이가 MK들의 교육 천국으로 알려지면서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두고 선교사들의 도덕성과 자질의 문제로 다가가는 것을 옳지 않다. 이는 크게 볼 때 선교(기관)의 전략 부재로 일어난 결과로 볼 수 있다. 또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 도시에는 선교사들이 과밀한 상태로 알려져 있는데 여전히 그 지역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는 상황이 계속되어 인프라들이 초과된 상황에 있다. 이는 동원과 현장의 소리 모두 부재된 상황이다. 반면에 아프리카나 중남미 지역은 현장에서의 요청이 있지만 한국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공유된 인프라들을 확대 재생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하며, 이에 대한 단체들 간의 협력과 책임 있는(과거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의 상황을 거울삼아) 연대가 필요하다.  선교는 현지인들을 향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위해 나간 이들에게도 향해야 건강한 선교로 이어질 수 있다.

3. 충분한 의사소통이 반영된 동원이어야 한다
그동안 선교 동원에 있어 양적 자원을 활용하는데 익숙하다. 그동안 인적 자원이 충분하다 보니 단기 사역자들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경향들이 컸다. MK 단기 교사들이 장기 선교사로 이어지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현장에 대한 실망과 과도한 업무 때문이라는 피드백은 곰곰히 꼽씹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사역 현장과의 소통을 대신할 수 있는 본부 사역의 기능이 필요하며 단기 사역자들과 현장을 연결하는 기능도 품어야 한다. 또 하나는 이미 헌신된 국내외 사역자들을 동역/협력자로 삼을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아마도 이번 포럼에서 세계 교회/선교사들과의 부족했던 소통을 반성했다는 것은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4. 선교 훈련이 충분히 이뤄진 동원이 필요. 
MK에 대한 이해 없이 한국에서 성장하는 아이들만을 경험한 MK사역자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현지의 교육적인 필요만을 보고 선교현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도 한다. 선교사들도 자녀 양육에 대한 기술과 철학의 부족을 만나게 된다. 선교헌신자에 대한 높은 기대치들이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부모와 분리된 MK들이다. 정체성에 대한 혼란부터 가정에 대한 안정감을 잃은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교사선교사들은 부모를 정죄하고, 선교사들도 교사들의 몰이해를 정죄하여 상호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돕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 훈련에 있어서 TCK를 이해하고 양육할 수 있는 영역을 반영해야 한다. 이는 싱글 선교사들에게도 필요하며 현지에서 팀사역을 할 때 가족 선교사들과의 갈등을 줄 일 수 있음과 동시에 도움을 제공하거나 받을 수 있게 된다고 본다. 
두 번째는 교사 선교사들도 선교사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의 정체성은 MK들을 가르치는 교직의 기능을 맡은 선교사이며, 훈련은 그것을 확인 시켜 준다. 또한 선교를 이해하면서 선교사들을 이해하는 기반을 갖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로 자녀 양육이라는 측면이 결코 단기 처방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선교 훈련은 예비 선교사들의 준비 훈련이 아니라 선교사들의 현지와 재입국으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과정을 포괄한 총체적인 관리, 재교육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몇 개월이 아닌 평생 교육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정보들이 계속적으로 갱신 되는 마당에 다양성과 정확성이 핵심인 시대에 일회성 교육만큼 우려할만한 것은 없다. 
네 번째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단체를 뛰어넘는 유연성을 훈련단계에서부터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세 번째에서 언급했던 평생 교육의 측면에서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중복 투자를 줄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선교 단체들이 먼저 멍석을 깔아줘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결론
10회 방콕포럼을 읽으면서 한국 선교의 성숙함을 위해 제시했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다음과 같다.

1. 대안은 있나? 
포럼의 내용들은 구체적인 실천 방안보다는 후배들에게 설교하는 듯한 뉘앙스로 느낀 것은 오버였을까? 참여자들 개개인의 의지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실천 방안이나 결의들(적어도 참석한 이들이 합의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이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포럼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또 하나는 하부 구조에서의 운동보다 상위 구조에서의 변혁을 우선적으로 언급해왔는데 그것을 현재의 선교구조 속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거대한 구조적 경직성을 이유로 교단 선교부를 제외한다고 해도 소위 선교단체들조차 그런 변혁을 위한 동력이 무엇이며 실현할 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젊은이들을 현재의 구조 속에서 동원하는 일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조한혜정(연대 사회문화인류학) 교수는 현재 대학생들의 모습을 신자유주의의 아이들이라 표현하고, 믿음 대신 불안을 태생적으로 가진 세대로 묘사한다. 현재의 훈련 프로그램들은 발굴과 동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개인의 헌신을 기대고 있지만 대부분의 단체가 인재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를 선교로 동원할 수 있는 원동력에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믿음과 신뢰가 우선) 체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탈권위주의 교육을 받은 이들이 권위주의의 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최근 MK들을 만나면서 이런 문제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데 우리의 구조가 순응적이고 소모적인 인재만을 찾아서 사역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기독 단체의 간사들이 과거에 비해 질적인 부분에 고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현재 선교단체는 어떤 상황인지 궁금하다. 


2. 선교적 교회는 가능한가? (한국 복음주의의 균열)
포럼 선언문을 보면서 생각난 것이 선교적 교회론이었다. 그런데 선교적 교회론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혼란은 바로 사회적 참여에 있다. 적어도 복음주의 1세대와 2세대의 갈림길은 이것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지난 20세기 끝자락부터 돌아보면 IMF이후 한국 교회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지점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한국이 신자유주의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80년대 후반부터 화두가 되었던 사회적 참여가 좀 더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력때문에 분리되었던 복음주의가 한국에서는 근본주의화되었다는 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발생한 갈등은 한국의 사회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심화되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2012년 케이프타운에서 있었던 로잔대회의 이야기를 서로 다른 두 라인을 통해 듣게 되었는데  그 인식과 평가가 달랐다. 그럼에도 그런 차이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와 언급은 없었다. 다시 말하면 두 라인의 소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없었거나 무시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은 선교적 교회의 정의는 표류하게 될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복음주의 1세대들과 2세대들간의 개인적 교류는 모르겠지만 공식적인 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런면에서 먼저 내부적 봉합과 수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서로의 영역에서만 노는 듯한 느낌을 받기에 선교적 교회 역시 현재의 시점에서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난 방콕포럼의 주제들은 분명 의미있고 한국 선교의 과거를 짚어보는 좋은 기회라고 평가할 수 있다. 폐쇄적이고 특수한 관계들 속에서 시작된 포럼이기에 그 내용들이 일방적이긴 하지만 이를 근거로 보다 깊은 주제를 다루는 포럼이나 모임들을 유도하고, 그 실천방안들을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포럼 선언문을 읽으면서 지난 선교를 돌아보고 예수께서 선언하신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은 여전히 우리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핵심 가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20세기에 있어서도 기독교의 전체 주제도 하나님 나라였고, 그에 대한 각성이 오늘의 기반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제는 앞으로도 하나님 나라여야 한다. N.T. 라이트가 말했듯이 우리를 중심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시선, 하나님 중심의 나라로 돌이킴으로 한국 교회가 현재와 내일의 선교를 보다 더 겸손하게 수행할 수 있으며 다른 교회들과 건강한 협력을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국민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