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를 묵상하면서 초대 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새삼 깨닫는다. 유대공동체 속에서 예수를 믿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독특한 특별히 따로 구별되는 어떤 모임이나 유니폼에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유대인들의 모임에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지 않았고, 예수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존의 율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실천하던, 예수가 팔레스타인에서 벌인 사역의 열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의 메세지는 단지 회당 내 유대 그리스도인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회당 내 모든 지파 유대인들에게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동안 하셨던 사역을 잇는 제자들의 활동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전도적 선교적 측면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의 무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 공동체의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개혁적인 측면, 율법의 온전함과 실천을 이야기한다. 마태복음에서의 예수 행적에서 찾자면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에서의 내부적 체질개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까? 그래서 외부에게 유대인의 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의가 비추는 삶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형식적 율법에서 벗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동시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선민적 사고관과 말빨에 의존하던 이들(혹시... 그...??)을 저격하는 것이고, 혈통주의가 아니라 '행함'을 통해 천국에 들어갈 티켓을 얻는 ... 음???
이 서신에서는 바울이 자주 언급하는 '복음'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추정키로는 야고보서가 기록하던 시기가 바울이 등장하기 전 유대공동체 시절이고, 그래서 '복음'이라는 단어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싶다. 아마도 그래서 바울의 신학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시선일 수 있겠다 싶다. 적어도 바울 서신, 바울 신학 이전의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 어떤 교회가 그렇게도 침마르게 외친 초대교회의 전투적, 확장적, 제국주의적 승리에 도취된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야고보 서신을 읽으면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 왕되심에 대한 격렬한 감정 대신에 내 일상의 삶을 날카롭고 차갑게 지적질받는 기분이다. 그래서 내(!)가 읽는 야고보 이야기는 예수 시대 가르침에 따라서 '회칠한 무덤'같은 유대인의 삶을 좌우로 찌르고 자르면서, 동시에 유대 그리스도인이 똥에 다가가지 않도록 경계하는 날선 검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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