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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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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2CGNTV]MK 교육, 현주소와 대안은? 개인적으로 인터뷰도 있어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ㅎㅎㅎ http://www.cgntv.net/cgn_player/player.htm?vid=59211
한국 현장의 변화 가운데 TCK와 한인 공동체의 증가에 대하여 2010 방콕포럼에서 이순근(다애교회) 목사는 "한국사회는 자녀 양육비 문제로 자녀를 많이 낳지 못하고 있으며, 목회자의 70% 이상이 교회로부터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형편인데 앞으로 본격화될 MK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모국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된 상태에서 진행되길 바란다"면서, "MK교육 문제에 대한 논의가 선교사와 후원교회, 단체와 교단들의 공동체적인 안목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 언급했다. MK에 대한 관심은 많이 높아졌지만 그와 함께 과거에 보여줬던 동정적인 시선은 줄어들었고, 비판적인 눈길도 높아졌다. 지방에서 MK에 대한 이해를 강의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참가자들 가운데 이미 MK문제를 대면한 경우를 만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기초적인 이해(문화적 심리적..
국제MK학교 지도자 포럼에 대한 생각 방콕포럼보다 조금 늦게 포딩되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필요는 비슷한 것 같다. 지난 국제 MK지도자 학교에서 언급된 필요들은 10년전 즈음에 있었던 모임들에서 나누어졌던 이야기와 변함없는 것 같다며 이야기를 나눴던 몇몇 사역자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럼 10년동안 변한게 없다는 말인가? 10년전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교사 양성을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했더라면 오늘날 다른 이슈들에 여유롭게 반응할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10년전에 비해 MK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지원이 늘어나고 있지만 MK에 대한 시선은 많이 변한 것 같다. 무엇보다 해외에 있는 많은 한인들의 자녀들도 동일한 필요가 있음에도 지원받지 못하지만 MK들은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는 것에 불편한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한국 교육환경..
기독공보]원칙없는 교육으로 그들이, 그들의 부모가 무너진다 제7회 방콕포럼, "공동체적 안목으로 MK교육 대원칙 세워야 한다" ▲ 교육문제는 선교사 사회에서도 매우 민감한 주제였다. 5일 간 진행된 회의 내내 신앙인이자 국제인으로, 나아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자녀들을 길러내기 위한 선교사들의 고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수시로 진행된 기도회에서도 눈물의 기도를 심심치 않게 볼수 있었다. 사진/장창일차장 【태국 방콕^장창일차장】'한국 MK사역 4반세기의 회고와 미래 전망'을 주제로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7회 방콕포럼이 선교사 자녀(MK)들의 바람직한 교육과 양육 등에 대해 논의한 뒤 본격적으로 해외선교를 시작한 지 30년이 채 안되는 한국교회가 현 시점에서 선교사들과 후원교회, 교단과 선교단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MK교육 지침'을 마련하고 파송훈련 시 철저한 ..
한국의 최초 MK 엘리스 레베카 아펜젤러 엘리스는 한국 감리교 최초의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와 엘라 아펜젤러 부부 사이에서 1885년 11월 9일에 태어났다. 그녀는 엘라 아펜젤러의 태중에서 태평양을 건넜고, 그해 가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이후 국내에서 유치원을 마치고 어렸을때 통신교육을 받다가, 11세에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치푸 스쿨(CIM소속 외국인 학교)에서 5년간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헨리 아펜젤러가 사고로 사망하고, 그녀는 미국으로 이동하여 고등교육을 마쳤다. 1915년에 감리교 선교사로 돌아온 엘리스는 이화어학당에서 영어와 역사를 가르쳤고, 1922년에 6대 어학당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25년 4월에 이화어학당을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켰고, 미일관계의 악화로 1940년에 강제귀국될 때까지 현재 신촌 자리를 마련하..
개신교 첫 순교의 피흘린 선교사 대원군 집권 3년인 1866년 병인년 우리나라 교회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곧이어 병인양요까지 치뤘으니 외세에 대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같은해 8월 평양의 대동강에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는데 이 배에는 스코틀랜드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은 로버트 토마스라는 선교사가 통역관으로 동승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한국 개신교의 첫 순교의 피를 흘린 주인공입니다. 1840년, 영국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토마스. 어려서부터 선교사에 대한 소망이 남달랐던 그는 드디어, 1863년 24살의 나이에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중국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곧이은 부인의 죽음과 선..
선교사자녀 이야기 기사보기 [호주, 한국 선교 120주년] 생존 선교사 가족 27명 초청 멜버른 한빛교회 감사 잔치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그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단순하게 감사할 대상을 되새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미래를 짚어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그 선조들의 섬김과 헌신 속에 한국 교회가 있었다는 걸 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한국 교회만의 축복이 아닌 이들 선교사들의 후손에게도 축복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기대하고 또 꿈꿔본다. 깨어 살아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