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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한국 현장의 변화 가운데 TCK와 한인 공동체의 증가에 대하여

 2010 방콕포럼에서 이순근(다애교회) 목사는 "한국사회는 자녀 양육비 문제로 자녀를 많이 낳지 못하고 있으며, 목회자의 70% 이상이 교회로부터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형편인데 앞으로 본격화될 MK교육에 대한 논의들이 모국의 현실이 충분히 반영된 상태에서 진행되길 바란다"면서, "MK교육 문제에 대한 논의가 선교사와 후원교회, 단체와 교단들의 공동체적인 안목 속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고 언급했다.

 MK에 대한 관심은 많이 높아졌지만 그와 함께 과거에 보여줬던 동정적인 시선은 줄어들었고, 비판적인 눈길도 높아졌다. 지방에서 MK에 대한 이해를 강의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참가자들 가운데 이미 MK문제를 대면한 경우를 만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 기초적인 이해(문화적 심리적 차이로 인한 어려움)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강의 수준을 그곳에 맞추다보면 아무래도 어렵고 힘든 것에 무게를 실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 MK이슈를 대면한 분들은 그런 기초적인 이해는 부족하지만 MK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에 대해 불편함을 감추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 MK이슈는 그것만(!)을 한국 교회에 요청하기엔 점점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또 한가지 이슈가 있는데 일부 선교사들의 세속적 시각에 있다. 왜 좋은 대학을 보내려 하는가? 소위 SKY, 이화여대, 서울권 대학, 한동대학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스팩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필자는 지방대에 있는 MK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NGO단체에서 꿈을 펼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이 대학진학때 다른 MK들이 가던 대학들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사실에 크게 좌절하고 힘들어 했던 것을 들었고 지방대에 가서도 처음에 많이 자격지심에 빠지며 힘들어했던 것도 기억한다. 다시 말하면 본인이 명확한 꿈을 가지고 있다면 그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곳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 속에서 살거나 연관되어 있을 때는 일종의 스팩쌓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성경적인 것인지 점검이 필요하다. 한때 과거에 유행했던 '고지론'을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라라는 도전 말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그 고지론이 얼마나 허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오히려 고지론을 이용하여 자신의 성장만을 가져온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살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상황에교사들이 자기 자녀에 대해 다른 한국 사람들과 다를바 없이 매여 있는 경우를 바라보면 참 답답하다. 
과거에 MK들이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SKY에 진학한 경우는 어쩌면 아무런 출구도 없었던 개척자와 같은 1세대 MK들에게는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 바라보며 달려가는 것은 운을 바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젠 조금 더 정확하게 재고 판단해야 한다. 이말은 소위 상류급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과 가야만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또 가야만 하는 것과 갈 이유가 있는 것도 다를 것이다. 
한국 교육의 환경 속에서 좋은 교육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어찌 모를까? 그럼에도 이런 시대정신에 거스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 자녀에게 오히려 축복의 통로가 될 것임을 믿으며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이런 정황 속에서 본다면 개인적으로 MK사역자들이 조금 더 지혜로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MK사역이 단순하게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는 것으로만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TCK이슈를 논의할 때 늘어나는 TCK와 MK들이 현장에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 모두를 품어갈 이슈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비율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그 하나는 TCK와 MK사이의 경제적 차이로 벌어지는 국제 학교에서의 갈등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역시 선교사들과의 팀을 이루는 사역자라는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팀 내부에서의 협의 또는 사역자 본인이 사역의 분배를 통해서 이루며 현장에 맞게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두번째는 기독교 교육에 대한 이해가 선교사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기독교 교육이 무엇인가? 기독교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자녀 교육과 기독교 교육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MK와 기독교 교육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MK 사역자들이 다시금 가져야 할 질문이자 나름의 대답을 가져야 한다. 지난 2010 방콕포럼에서 홍세기 선생님이 발제하려 했던 "기독교 교육과 바람직한 MK교육관"은 그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의 긴 글을 다 인용할 수 없지만 그가 말한 기독교 교육은 전인적, 인격적, 관계적, 다차원적, 책임있는 존재로서의 인간관, 단순히 지식이 교실 안에서만 받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 그리고 기독교적 가치에 입각한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홍세기 교장은 이미 교육이 상품화된 상황에서 더 좋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먼저 '우선적으로 둔 가치는 어떤 것'인지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다. 바로 왜 부모가 선택한 교육을 자녀에게 권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교사들이 먼저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 인 것이다. MK사역자들은 이것을 염두해 두고 사역 속에서 있어야 할 것이다. (조만간 홍세기 교장이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세번째 자녀들의 부모인 선교사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기독교사들을 보면 매년 초에 새로운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가정의 형편을 보고 아이의 상황을 미리 파악한다. 이런 가정 방문은 아이의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부모와 선생님간에 일종의 신뢰를 형성하고 또 아이의 상황에 선생님이 개입하는 선긋기를 하는 전초전이 되기도 한다. 선생님의 교육방침을 각각의 아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려 할 때 혹이라도 야기될 문제를 미리 제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관계 중심이기 때문에 미리 만남을 갖게 되면 이런 부분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리 부모 선교사들과 관계를 만들고 종종 자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해 준다면 사역 속에서 발생될 많은 갈등들을 조금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간단하게 생각한 것을 옮겨 보았는데 이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그동안 MK사역자들이 몸부림쳐왔다는 것을 한국 선교계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번 방콕 포럼에서 MK를 주제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노고와 헌신의 결과라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가 우리에게 놓여진 숙제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볼 때 우리가 두는 관심에 비해 한국 선교계나 교회가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한국 교회가 과거에 MK를 바라봤던 시선과 많이 달라져 있는 현실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제 MK에 대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과거의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 생각한다. 

MKBN이 그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