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복음주의, 이제 묻어야 할 때인가? 우리집 데크가 삐걱거린다. 이걸 살릴 생각을 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썩은부분을 도려낸들, 이미 지지하던 곳들과 체결부들이 뭉그러졌으니까. 그 전에 손을 봤으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거다. 그러나 망가지는 걸 보면서 다른 망가지지 않은 부분들이 있는 것에 안주하면, 다른 체결부나 목재의 조직들이 부하를 그만큼 더 받게 된다. 그렇게 망가지면 다 뜯어내야 한다. 작년 로잔대회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이건 망했네.' (그러니까 지금으로로부터 10년전 복음주의운동의 강연을 들었던 것과도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 운동 강좌 3강을 듣고.오늘 3강은 한국 개신교 복음주의운동의 분화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1960년대 영미권 복음주의 진영의 분화가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하게 .. Microaggression(미시적공격) vs. Microculture(미시문화) 처음 여권을 만들 때, 내 성을 B로 시작하려 했지만, 문득 큰아버지의 편지에서 마주했던 성이 떠올라 결국 P로 기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과는 다른 영문 성을 갖게 되었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요즘 미국의 출입국 상황을 보면 언젠가는 공항에서 예상치 못한 제지를 당할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얼마 전 사촌 형의 영문 이름을 보게 되었는데, 우리 가족의 항렬자는 ‘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joon’, 나는 ‘jun’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만약 형의 이름을 여권을 만들 당시에 기억했다면, 적어도 항렬자는 맞췄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어쨌든 단순한 철자 차이처럼 보이지만, 문화 사이를 넘나들며 생기는 위화감은 종종 이런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곤 한다. 마치 분명히 한국인이면서도.. 삐뚤어진 내 생각때문일 뿐이야. 음? 연구논문 몇 개 보다가 좀 의아했던 글.예컨대, “부모가 현지 선교에 집중하는 동안 자녀는 현지인 교회학교에 다니거나, 부모가 출석하는 교회를 따라가 예배드리는 수준에 그친다”는 서술이 있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2020년 무렵 발표된 논문에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 발표된 정황을 그대로 반영하여 인용한 것이었다. 무려 20년이 지났고, 그 사이 한국 선교의 양상도, 현장의 현실도 분명히 달라졌을 텐데, 그 변화에 대한 검토 흔적을 볼 수 없었다. 그냥 “선교사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여전히 빈곤하다”는 결론을 밀어붙이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실제 현장이 어떤 식으로 변하는지 보다는, 연구자의 감정과 머리에서 그려진 것에 고착된 것처럼. 이런 식의 논문을 MK 연구에서 가끔 마주하게 된다."선.. 분식집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를 생각했다 귀환의 충돌: 정체성과 공간 기억 나는 인문사회보다는 신학에 더 관심이 많았고, 선교사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이 단지 선교적 이슈에 그치지 않고 사회학적 문제의식으로 확장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는 한 번도 집을 떠나본 적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남아공에서 혼자 살아본 경험은 내 정체성을 다시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단지 유동적인 삶을 수용하는 경험에 그치지 않고,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의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시점이기도 했다.이후 한국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아가던 중, MK들이 겪는 ‘뿌리 없음’의 감각을 알게 되었고, 이는 나에게 ‘이동성’이라는 인간의 특성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성찰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단지 특정 집단을 외부에서 바.. 2025 다문화 교육학회에서 느낀 점. 1. Microaggression과 인종차별의 재현 팬데믹 이후 증가한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범죄,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 이후 가시화된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을 향한 공격적인 정책들은, 한동안 미국 사회 내부에서 일정 부분 해소되었다고 여겨졌던 인종 갈등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특히 흑백 간 갈등과 그 해결 과정에서 아시아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배제된 채, 이들의 차별 문제는 여전히 비가시화된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시적 차별(Microaggression)’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노골적이지 않더라도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차별의 방식에 대한 민감한 인식을 보여준다.한 연구는 차별이 노골적이든 간접적이든 혹은 미시적이든 간에, 그 경험들이 개인의 우울과 깊이 연결.. 농업용 호스 비교. 영X vs 조X 텃밭을 만들면서 물주기가 결국 과제라서 긴 호스를 구입해서 연결하기로 했다. 텃밭이 집에서 가까우면 별 문제가 없었겠지만, 끝에서 끝으로 하다보니 호스가 50m 정도가 필요했다. 3년전 지다던 길에서 구매했던 것이 조은호스제품이었는데, 3년이 지나도 변형없이 잘 쓰고 있어서 온라인 상에서 구매하려고 찾다가 같은 압력을 견디는 회사를 발견하고, 가격도 저렴해서 질렀다. 그러나... 두 제품은 호스 두께 차이가 있었고, 조은호스사는 16mm여서 조금더 컸다. 호스 직경 차이도 있지만 두께 차이가 있어서 길게 풀어내는데 있어서 영X은 쉽게 꺽이고 꼬인다.영X은 아무래도 작물에 물을 주는 서브 호스로 사용하고, 조은호스는 메인으로 사용하여 커텍터를 통해 연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으로 물통을 구매해서 .. 야고보 이야기 -01 야고보서를 묵상하면서 초대 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새삼 깨닫는다. 유대공동체 속에서 예수를 믿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은 독특한 특별히 따로 구별되는 어떤 모임이나 유니폼에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유대인들의 모임에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을 강조하지 않았고, 예수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존의 율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실천하던, 예수가 팔레스타인에서 벌인 사역의 열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의 메세지는 단지 회당 내 유대 그리스도인에게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회당 내 모든 지파 유대인들에게 마치 예수님이 공생애동안 하셨던 사역을 잇는 제자들의 활동이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전도적 선교적 측면에서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예수의 무리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유대.. 복잡한 사회 너머에 숨겨진 것들 [지랄발광같은 내머리] -경고- 짧진 않고, 의식의 흐름으로 쓴 글임.솔직히 아무것도 바뀐 건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의 일정을 챙기면서도 이 껄끄러운 이 세계의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인간의 탐욕 속에서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달려가고 있다. 어젯밤에 버틀러의 "젠더트러블"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것들은 진리의 부재, 현실 상황에서의 질서와 소수자들의 몸부림 등을 어떤 방식으로 이 사회 속에서 재구성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내 영혼은 아득히 먼 저 곳으로 흘러가 있었다. 아마도 재구성이라는 의미는 어떤 목적과 균형이 존재하고, 현재의 불균형을 흔듦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간과했던 문제를 수면 위로 올려 놓는 것을 말하는 듯 싶다.다문화를 공부하면서 현대 사회의 빠른 속도 속에서 인간의.. 이전 1 2 3 4 ··· 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