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외고 2학년 김윤겸(17)군. 김군은 어릴 적 미국 벨기에 등 두 나라의 초등학교를 경험했다. 외교관인 아버지의 근무지 때문이었다. 벨기에 국제학교에서 5∼7학년을 마친 뒤 2004년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했다. 그 즈음, 김군은 '해리 포터 시리즈' '반지의 제왕'은 영문판이 편했고 도덕 문제는 답을 봐도 끝내 이해가 안되는 이방인으로 자라 있었다.
무한 경쟁의 한국 학교 시스템에서 윤겸이의 생존 확률은 객관적으로 높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 노정현(41·서울 자양동)씨의 우려와 달리 윤겸이는 "한국은 왜 이러냐"는 불평 한 마디 내비치지 않았다. 귀국 첫 학기 반장을 맡았고 군말 없이 영어 문법을 공부했다. 잦은 이주 경험 속에서 어느새 윤겸이는 '세상은 넓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친 것이다.
물론 학업 진도를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미국에서 보낸 2년 6개월(초등1·2학년)과 벨기에 국제학교를 다닌 3년여 동안 윤겸이는 학교 수업을 모두 영어로 받았다(미국 체류 이후 2년여간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님). 초등학교 때부터 차근히 다진 한국 학생들의 한글 어휘력을 단기간에 따라잡는 건 불가능했다. 노씨는 "윤겸이가 치어(稚魚)가 어종(魚種)의 하나라고 생각하더라"며 웃었다. 각종 올림피아드, 토플식 영어 공부, 엄격한 사제 관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학원 등도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윤겸이에겐 어색하기만 했다.
문화적 충격도 작지 않았다. "벨기에에서 친구 어깨에 팔을 두르면서 '밥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어요. 서구인들은 신체 접촉이 많지 않으니까 친구가 싫은 기색을 보였나봐요. 그때 많이 놀랐어요. 벨기에는 한국과 많이 다르구나. 3년여만에 한국에 와보니 이번엔 툭툭 치고 부딪쳐오는 한국애들이 어색하더라구요.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윤겸이의 말이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어머니 노씨의 유연한 태도는 윤겸이를 붙잡아주었다. 노씨는 학교든, 문화든 '그곳'과 '이곳'의 다른 잣대에 대해 가치 판단을 삼갔다. "이게 맞다"고 하는 대신 "여기에선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말했다. "학교 시스템은 나라마다 많이 다르잖아요. 체벌 등을 두고 의견이 다를 수 있죠. 하지만 나는 어디에나 장단점이 있다고 믿어요. 현지 시스템에 맞춰 적응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학교와 선생님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게 적응의 지름길입니다."
벨기에에서 다닌 국제학교의 교훈은 컸다.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국제기구 본부가 위치한 브뤼셀 국제학교는 인종과 국적의 전시장. 미국 영국 프랑스 폴란드 핀란드 중국 네팔 등 온갖 국적의 학생들이 뒤섞여 한 반을 이뤘다. "다 다르니까 다른 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웠어요. 서로 인정해주게 되구요." 그렇게 윤겸이는 한국에선 한국식, 벨기에에선 벨기에식, 미국에선 미국식을 따라야한다는 걸 체득했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윤겸이의 기초 한국어 실력은 큰 자산이 됐다. 집에선 반드시 한국어를 쓰고, 해외에 있는 6년 간 꾸준히 주말 한글학교에 다닌 덕이었다.
노씨는 "한국책을 많이 가져갔지만 현지 적응에 신경쓰다보면 한국책을 꾸준히 읽는다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며 "집에선 한국어를 쓰고 미국과 벨기에에서도 주말에는 거르지 않고 교회 부설 한글학교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원칙을 세운 건 아닌데 아이도 "엄마한테 어떻게 영어로 말해, 부끄럽게"라고 했단다. 한글학교의 국어와 국사 수업은 교과서 맛보기 수준이었지만 감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대원외고 지원 당시만해도 미국 대학 진학을 생각했던 윤겸이는 국내 대학을 준비하는 일반반으로 진로를 바꿨다. 윤겸이는 "대학 졸업 후에도 해외 대학을 경험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며 부모님이 한국 대학을 권했다"며 "지금은 좀 힘들지만 내가 한국인인데다, 나중에 다시 한국에 돌아올 거라면 여기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한국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배우자 근무지 변경 등의 이유로 초·중학교 자녀를 2년 이상 미국 유럽 등지에서 키운 어머니 5명으로부터 '귀국 자녀'를 지도할 때 지켜야 할 다섯가지 원칙에 대해 들어보았다.
①현지 교육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라
한국에서는 영어, 해외에선 한글 공부로 아이들은 시달린다. 이래선 어디에서도 행복할 수 없다. 그곳이 어디든, 현지에서 누릴 걸 누리고, 포기할 건 포기하자. 그래야 후회가 없다.
②타 문화 경험의 장점을 납득시켜라
다른 시각과 문화를 접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아이에게 설명해줘야 한다. 긍정적 사고는 적응으로 이어진다.
③현지 한글 학교를 활용하라
한국어 실력은 국내 재적응의 최대 관건이다. 현지 한인회나 교회 부설 한글학교는 한국 학교의 축소판인만큼 감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이가 먼저 원하지 않는다면 과외와 잔소리는 효과 없다.
④아이에게 적응 시간을 줘라
출국해서든, 귀국해서든 적응에는 시간이 걸린다. 적응 기간은 아이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나가서 살았던 기간만큼 아이에게 유예 기간을 준다고 생각하자.
⑤떠날 때 준비하자
떠나는 이유가 무엇이든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떠나기 전에 아이에게 왜, 얼마나 떠나있을 것인지 이야기해주고 이후 계획까지 대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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