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ge of Life/삶의 언저리

대화의 벽을 느끼다.

최근 생각나는 그 무언가 사물의 '이름'을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어려운 적이 종종 있다. 사람들의 이름을 까먹는 것과 다른 형태의 혼돈이다. 예전엔 나보고 '청산유수'라 했다. 그만큼 말발하나는 죽여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건 이제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더듬거리며 반복대는 말들과 머리속에서 날라다니는 사물과 매치되지 않고 흩어진 '이름'들, 그래서 어색해져버린 대화는 한두번의 일이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그랬다. 바쁘냐고. 그렇다고 했다. 마음편히 먹으면 좀 좋아진다 한다. 모든게 속도때문이란다. '속도라...' 하긴 ... 빨라졌다. 처리 속도가 빨라진 건 아니지만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시간이 짧아진건 사실이다. 또 머리속에 하나의 생각으로만 집중하는 일도 적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생각들이 산만하게 흩어지는게 요즘 일이다. 그래서 였던건가?

그래서 점점 메모의 중요성이 절박해진다. 아이폰이면 좀 더 쉬울 줄 알았던 메모 습관은 아날로그 수첩으로 회귀했다. 아니 메모장이 있어도 메모하는게 귀찮다. 이러다 녹음으로 갈지 모르겠는데... 귀차니즘은 그 상황을 스케치 하는 일에 인색하게 군다. 그리고 내 손과 발을 느슨하게 해 준다. 그래서 놓치는 아이디어들은 상당한 것 같다. 물론 쓸만한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설득형이다. 말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압력을 주는 태도가 있다. 그렇다고 논리적이거나 날카로운 압박이 있는 건 아니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대화를 하고 나면 후회한다. '너무 많은 말을 한건 아닌지,' '너무 압박한건 아닌지' 소심함의 극치다. 그럼에도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즐긴다. 독재자형이어서 그런가? 고집도 고집이지만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형이긴 하다. 

혼돈, 속도, 잃어버린 생각, 말하는 자... 이런 연유로 인해 나는 듣는 것에 약하다. 강의와 설득적인 것에 쉽게 빠져들어가긴 한다. 그렇지만 나는 종종 말하는 자의 입장에 놓이곤 한다. 그래서 항상 그런 잘난체하는 나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래서 '이름'을 찾는 일이나, 생각을 차분하게 하여 집중하거나, 그런 것을 정리하거나, 들어주는 부분들이 어렵고 힘들다. 

최근 진행되는 회의를 보면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설명하는 무한 반복을 경험한다. 또 얼마가 지나면 같은 이야기의 재탕이 된다. 다른 어떤 것으로 시작할 뿐, 결국 논지는 비슷하다. 아니 삼자의 입장에서 논지가 비슷하다고 느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두 어떤 말에 자신의 해석을 강조하다보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더 어려운 것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그동안의 대화들을 보면 그 주제가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왜 그럴까? 듣는 힘이 약해서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적 차이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상호신뢰의 부재가 원인이라 믿는다. 상대를 믿으면 의도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러나 신뢰하지 않는 이의 말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소통의 부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말 그대로 대화가 없는 '부재'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자주 하지만 소통이 안되는, 마치 바벨탑 사건과 같은 의미다. 

빠른 속도전 속에서 희미해지는 기억의 끄나풀을 가지고 타인과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거대한 벽을 대면하고 있다. 소통... 좀 더 영민하고 처리능력있으며 대화의 기술을 가지고 감성적으로 반응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낼 수 있는 슈퍼맨을 생각한다. 이런 글은 역시...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군. 혹... 울 하나님 마저 나와 소통의 부재를 겪고 계신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