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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유럽의 이주민 정책들을 살펴보다.

번역기사: 매력을 잃은 유럽의 다문화 주의. 코리아 리얼타임 번역

MULTI

(쓰고 보니 글이 포인트를 제대로 못잡은 거 같네요. 글쓰기 차원에서 그냥 남겨 봅니다.)

최근 영국의 급증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이주에 대해 영국 총리는 다문화주의가 거부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그동안 관대하게 대해왔던 것에 반해 확대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번 기사를 한국인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입니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유럽의 대표적인 국가 프랑스, 영국, 독일의 경우를 비교해 볼 때 한국은 공식적인 원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일본의 자이니치에 대해서조차 일관적인 대책이나 지원이 뚜렸하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외국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왠지 시기상조인 듯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현재 정부의 정책을 본다면 아주 정책이 없는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국제 문제로 비화시키지 않으면 침묵하다가 국제문제로 비화되면 그때서야 수습하는 일종의 눈감기입니다.  또 한가지는 아직 한국 사회가 단일 문화권으로 존재하다 보니 타문화에 대해 사대주의적인 사고를 보여줍니다. 과거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의 국가 국민 또는 재외국민에게는 관대하다가도 그 외의 국가 국민 또는 재외국민에게는 매몰찹니다. 

한국의 과거 역사를 이해하면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만, 현재 처한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합니다.(과거를 이해하는 과정을 갖기에는) 이미 한국내 밀려든 외국인 노동자들(무슬림을 포함하여)은 그 수가 87만명(2009년 현재. 등록 외국인)에 이르며 불법체류를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입니다. 이런 수의 노동자들이 몇몇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역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최근 이들에 대한 범죄 기사들이 자극적으로 언론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인권과 적절한 보호가 필요함에도 정부는 형사처벌로, 언론은 감정적 차별로 대하면서 반 다문화 정서가 돌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과 불이익은 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이 문제들에 대해 정부는 의외로 소극적이며 기업주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아마도 정부는 다른 것이 시급한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정 마태 선교사의 해외 이주민(특히 무슬림)에 대한 정책비교를 발표한 것이 기억납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사례로 비교하며 한국에 오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정책이 필요함을 다루었습니다. (한 블로거가 잘 옮겨놓으셨네요. (하늘문)

오늘 올라온 기사는 영국에 대한 이슈였습니다. 아무래도 기독교 국가였던 과거 역사가 타문화 이주민들에 대한 시선을 만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문제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지글 살고 있는 이들은 어쩌면 과거 조상들의 업보인 식민지 정책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프랑스는 더 심한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정마태 선교사는 유럽의 세가지 이주 모델, 모자이크, 혼합, 방문자 모델들을 통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A-4.) 그는 영국을 중심으로한 케이스를 거론하면서, 당면한 문제들을 함께 대화를 하면서 풀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 기독교 내부에 불고 있는 "이슬람포비아(이슬람공포증)"이 하나의 단면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기독교 내부에서는 "포비아"가 먹히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 이에 대해서 기회가 되면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그 속에서 대화란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최근 불교 사찰에 대한 몇몇의 무례한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한국 기독교계에서 무슬림과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구요. 타종교와 대화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무엇보다 자국의 이득을 우선하는 분위기에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처럼 정당성(명분)보다 전통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것에만 반응하려는 것이 크다는 것이 절망을 느끼게도 합니다. 

최근 이주 노동자 이슈에 대해 종교계에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이들의 활동이 무리하고 과격한 면도 없지 않으며, 오류와 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곳을 바라보며 그들의 소리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직 우리는 다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고, 이를 풀어갈 정책이나 사회적 관심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실용적으로 접근하지만 인권이나 통합에 있어서 관심이 없으며, 국민들은 경제적 손익 계산을 통해 다문화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순수성 신화가 자민족 중심주의를 기초로 차별에 대한 태도가 보편화된 구조 속에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 다문화 사회에 대한 기본적 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활발한 토론과 연구를 지원하고 교육에 있어 다문화 정책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 원칙은 적어도 각 영역에서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반영토록 하고 그에 대한 평가들이 나오면서 정책에 재반영되는 길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운동들은 도움의 차원에서는 충분조건이 될지 모르겠지만 보다 큰 시선으로 사역의 목적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에 있어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돕는 것이 단순히 소수의 피해자가 정당한 대접을 받는 것에 있다면 그 '정당한 조건'이 적어도 내국인과 여러모로 같은 수준이라고 한다면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 있을 당위성은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평등권은 중요합니다.)  이주노동자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국내에 의미가 있다는 것은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에 있어선 최소한 합의된 원칙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운동가들에게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럴 때 내국인의 힘을 얻는 이주 노동자운동이 될 것입니다. 

정마태 선교사가 제시한 모델들은 모두 장단이 있습니다. 모자이크는 "다문화의 고유성"을 지켜주는 장점 대신 문화적 경계 속에서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최근 영국 수상의 불편한 심기는 이를 반영합니다. 그렇다고 배타적인 독일의 '손님'정책은 경계선을 명확히 함으로 소수자의 게토화를 이루어 조화와는 거리를 두게 됩니다. 프랑스의 "동화(짬뽕)"정책은 프랑스 문화를 용납해야 하지만 실제론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갈등과 폭발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우리는 세가지를 비교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적으로 다문화 인식의 전환이 있기전에는 독일식 "손님"정책이 모두에게 공감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솔직히 가장 깔끔한 형태라 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도 그렇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손님으로 온 그들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만 신경쓰면 된다는 것이지요. 물론 장기적인 정책으로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어떤 정책을 시작하면 이후에 평가를 거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방인인 그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입니다. 한국 문화는 배타적이며, 사대적입니다. 본질은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는 그렇게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저 안에도 있습니다. 일례로 문화적 차이를 다름이 아닌 격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격'을 '다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타문화 경험일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쉽게 실수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격'에 대한 차이일 겁니다. 하물며 하나의 문화, 그것도 가족 문화에서 성장한 우리에게 타문화를 평등하게 다르게 보라고 하는 것은 분명 무리일 겁니다. 그렇기에 이 배려심을 위한 다양한 교육이 우리에게 필요하며, 문화의 존중을 배우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미 기독교는 그런 토양 속에 있습니다. 한국이 '선교'라는 길을 통해 크게 성장하였습니다. 다양한 문화들이 이미 경험되었습니다. 다만 다양성의 이해없이 접근했을 뿐입니다. 과거 서구 기독교에게 있어서 한국도 그런 경험을 통해 충분히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런 은혜를 베풀어야 할 것입니다. 이주 노동자문제는 한국내에서 첨예한 문제로 분명히 다가올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용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한국 교회가 먼저 기준을 세우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길어졌지만 위의 본문 기사가 그동안 제대로 한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주장이 되어 이주 노동자문제(무슬림을 포함해서)를 쉽게 풀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에 글을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