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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20번째 할아버지 기일에 가족이 모이다.

사람이 세상에 오고 가는 것은 인간의 힘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남기는지는 우리의노력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작은 키에 강한 생존력을 가지셨던 분이다. 그럼에도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유형적인 것은 아니었다. 믿음의 유산.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분이 신앙에 탁월하신 분은 아니셨다. 평범하셨다. 그럼에도 그분의 신앙을 바라보는 것은 그분이 살아오셨던 삶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셔서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동란, 그리고 근댛화를 온몸으로 경험하셨던 분이셨다. 분단으로 자녀들 일부를 이북에 남겨두셔야 했고, 세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셨다. 그중 막내가 아버지이고, 나는 장남이다. 그 변화무쌍한 시절을 "하나님" 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인생이셨습니다. 어려서 신앙으로 시작하셨고 마침점을 찍으셨다. 그 유산은 오늘의 내가 선교사로의 삶을 살도록 이끄셨다. 

후손들은 그분의 삶을 돌아보는 추모식에 함께 함께 했다. 멀리 미국에 있는 큰아버지는 참석하지 못하셨다. 고모와 은리 누나 가족이 함께 하였다. 우리는 왜 모였을까?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것? 그것만이었을까? 아니다. 우리는 매년 모이는 이유는 그분의 삶을 통해 우리가 오늘을 사는 길을 찾기 위함이다. 그분의 좋았던 것만이 아니라 어려웠던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오늘을 사는 지혜를 배운다. 

신앙이란 우리가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다. 물론 죄를 용납하시는 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을 기대치는 않으시는 것 같다. 죄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죄에 대한 미워하는 마음이겠지만 죄를 짓고 그분 앞에서 정직하게 드러내는 태도다. 이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바로 다윗이 그의 충실했던 장군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한 일이다. 권력의 힘을 이용한 그의 죄는 이스라엘의 큰 죄들의 리스트에 들을만 하다. 죄를 잘 감췄음에도 폭로되었다. 죄에 대한 폭로에 대한 그의 태도는 죄를 감추고 조작하는 대신에 폭로된 죄를 인정하며 회개하는 일이었다. 신앙은 우리가 어떤 일에 직면하였을 때 행동하는 것의 근본적인 이유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기에 후손들이 모여 신앙의 선배요 할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된다. 오늘 모임은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기본이고, 신앙을 되새겨 보는 것은 우리 모임의 본질이 된다. 무엇보다 새로운 인물이 우리 가족으로 소속되는 기쁨을 함께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의 일원으로 멍멍이들에게 질서를 가르치다. ㅎㅎ


고종 사촌인 은리 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