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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올해 수시 모집은 최악. 나의 자녀에겐 물려주지 않으련다.

"입시 교육업계 등에 따르면 수능 이전에 원서접수를 마감한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 11개 주요 대학에 62만1647명이 지원,
지난해(27.94대 1)를 뛰어넘는 32.86대 1의 평균 경쟁률을 보였다." 

" 수도권 33개 대학의 지원자는 103만7836명에 달했고
평균 경쟁률은 33.28대 1(지난해 26.55대 1)" 

과거를 생각해 보면 정시에 따르는 것이 수시였다면 이제는 수시가 대학입학의 주요 전형으로 발전될 것 같다. 다만 현재의 시스템으로 볼 때, 변별력이 떨어지는 상황에 있어서는 본래 취지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들의 초중고 시절을 자신의 재능을 계발하는데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수시에 맞는 학원을 찾아다니는 현재의 상황은 어떤 입시제도를 도입해도 결국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시 모집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이다. 그것을 하기 위해선 대학이 우선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럼에도 아이가 사회의 진출을 준비하는 자리에 이르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이 없다거나 적어도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다. 아니 사육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 생태 속에서 수시 모집의 그 핵심은 바로 "자기"가 좋아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통해 앞으로 "자신"이 할 것을 지원한 누군가에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은 논리와 수리에 치우쳐 있다. 반면에 감각, 감정, 직감의 영역은 배제되어 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수리와 논리는 생존할만큼의 계산과 논리적인 것이 필요할 뿐인떼, 모두 그것을 바탕으로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에 의해 다뤄지고 있다. 그정도의 능력은 대학교수정도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많은 사회 활동은 감각과 직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많다. 결국 이런 능력은 "가르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삶"을 즐기는 가운데서 나온다. 음악이나 미술의 기본적인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 나머지(사실은 전부인)는 직관과 감정, 그리고 감각에 의해 인도되고 성장한다. 즐기지 않으면 딱딱하고, 제한적이다. 

최근 모 단체에서 대학입학에 대한 간단한 설명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수시의 구조와 방법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이 아까웠는지 모른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는데, 지금의 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불합리한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조금 구조를 바꿔, 교육, 대학의 본질에서 접근했다. 그것이 적어도 나는 맞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들의 판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 아이의 미래는 부모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미래는 부모의 것이 아닌 아이의 것이다. 적어도 아이가 선택할 부분을 부모가 자녀의 성장 속에서 내어주는 교육을 한다면 앞으로 대학입시 준비는 보다 마음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앞에서 보여준 33.28 vs. 1이라는 경쟁률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