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u in Diversity

Kelley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터뷰를 보며...

교육은 어떤 목표를 두어야 할까?
여기 하나의 모델을 말하고 싶다. 교육 이론이 아닌 한 사람이다.
한국 교육 환경을 듣고 한국에 와서 경험하고 그것을 바꾸려는 작은 움직임을 친구들과 만들었다. 미국 소녀 Kelley Katzennmeyer의 다규멘터리.
예전에 "하자센터'에서 학생들이 학교외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움직임을 보고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런 움직임을 정상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그들에게 의미를 만들고 삶의 이유를 주지만 세상은 그런 모습이 보편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많은 이야기를 풀고 싶은 것은 아니니... 켈리의 시선과 마음의 움직임에 따른 결정, 그런 선택을 받아준 부모님, 그리고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회의 관용도를 말하고 싶다. 이것들은 오늘 한국 사회가 갖고 있지 않은 배려이자 가장 중요한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화로 줄일 수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개인의 존중보다 사회적 질서(비록 부정적일지라도)를 지키는 것이 더 가치있어 보이는 것 같다. 무엇보다 기득권이 보여주는 욕심은 그 기득권을 쟁취하려는 이들의 욕심과 충돌한다. (물론 근원적으로 볼때 둘 다 똑같은 인간의 욕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런 환경을 제공한 첫 원인자는 분명 기득권이다.) 그런 사회에서 기득권이 자신의 안정을 만들어가는 기반인 모더니즘과 이데오르기, 자본, 세계화 등의 요소들은 오늘의 교육 형태를 만들고, 강화시키고 있다. 그 속에서 성장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과 가치, 미래를 거세당하고, 사회의 순응만을 요구한다. 아마도 그런 곳에서 자신의 욕구를 표출하는 것은 내부적 폭발, 즉 게임, 폭력, 일탈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를 "루저"라 부른다. 
교육은 각 아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는 장이어야 한다. 각 아이들에게 있을 가치와 가능성은 경제적 가치가 아닌 한 생명의 가치이자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가치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예측가능한 어떤 결론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야 할 우리의 연속적인 이야기다. 그렇기에 켈리가 선택한 길은 그녀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그녀와 이어진 다른 한국 고3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가치를 실현하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 보다 나은 사회를 기대하고, 그 이야기에 자신의 참여를 원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켈리는 이런 것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하지만 켈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아이들도 저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면 위의 이야기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39 Kelley Katzenmeyer from mosaicist.net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