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샌다고 했던가?
그동안 교회 지도자들의 열심은 전통적으로 전하고, 세우며, 양육하는 일에 치중되어 있었다. 성도를 방문하는 일로 정신없이 집밖으로 나서야 했으며, 그들의 요청이 있을때마다 나서야 했다. 그렇게 바쁜 것이 미덕이었고, 옳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정은 그만큼 불안정했다. 집안일에 힘써야 할 아내는 사역자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무장했고, 교회의 일이 전부가 되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국 교회는 넓게 퍼져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러한 것이 오늘날의 불건전한 교회의 양상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교회의 건강은 외적인 요소에 의해 판단되어졌기에 외적 성장과 외형에 치중된 것이 현실이지 않았는가? 그러나 내부를 살펴보면 형식적인 구조, 권위의 왜곡, 그리고 대화의 상실이 가득하다. 이것은 조금 더 들어가면 가정이라는 구조속에서 벌어지는 일과 상통한다.
정기능의 가정을 세우고, 모델이 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임에도 일중심의 모델이 중심이 되었고 가정은 언제나 포기할 수 있는 것이라 여긴 지도자들의 잘못된 인식이 그 첫번째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감독의 조건에 건강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남편인 사람을 요구한다. 다시 말하면 가정은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며, 구조이고, 바른 권위의 시작이다. 이런 기본을 인정하지 않거나 덜 중요한 것으로 여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은 가능할 수 없다. 이것은 오늘 한국 교회가 그 증거라 할 수 있다.
건강한 가정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매우 이상적인 것이라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딘가 하나씩 고장나거나 결여된 부분을 안고 있어서 가정 속에서 정확한 기능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가정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러한 부족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느정도 목표치에 근사한 값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가정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부족함을 매워주시고 더 나아가 가정이 계속 건강한 가정을 꿈꿀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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