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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나의 사십은


이십 대는 모험속의 스릴이었다면,
삼십 대는 나를 과시하고 싶었고,
사십은 나보다 너였다. 

그래서 건축을 바라보는 눈도, 신앙의 관점도 그렇게 바뀌어가나 보다.

그래서 너와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라 말할 수 있나 보다. 
강정도 살았으면 좋겠고, 밀양도 살았으면 좋겠고, 4대강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 북한도 살았으면 좋겠고, 한국에서 무시받는 이방인들도 살았으면 좋겠고,
질투 속에 어울리지 못하는 너희들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사는게 지금보다 더 기쁠 것 같다. 
아직 나는 나를 더 생각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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