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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부모교육에서 만나는 불편함, 계급세습

요즘 조국사태를 보면서 내가 하는 일과 걸친 부분에서 자꾸 돌아보게 되고, 고민케 하는 부분이 있다.(이번 사태를 보면 윤리적 측면에서의 문제성이 있을지 몰라도 법적인 문제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부모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이번 논란가운데 거론되는 “계급세습”에 대한 불편함이다.

부모교육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시스템에서 공교육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난 20년동안 비판하고 제안된 미래인재상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선택이라고 설명한다.(다른 나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현실) 자율, 혁신, 창의, 협력 등의 용어가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기대하고 있을까?  교실에서 개인의 특성을 계발하는 여정을 한 선생님이 교실 안에 있는 23-25명 학생을 공정하게 관찰, 교육, 평가할 수 있을? 우리의 현재 교육 구조는 아이들의 서로 다름에 따른 역량 계발보다 보편적 평균성을 높이는데 최적화 된  아닌가? 미래 사회가 필요한 인재는 그런 사람이었나?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부모교육에서는 부모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그 한 결에서 부족한 역량을 확보하는 노력을 요청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부모의 주변에 연결된 자원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소위 사교육이라 하겠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역량을 특정하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의존할  밖에 없다. 최근 현대 교육을 비판하는 중심에는 인지지능에 대한 비판이 존재하는데, 가드너 박사는 다중지능을 통해 개인의 다양한 감각의 통합적 배움이 일어난다고 강조하며 기존의 인지중심 교육을 비판한다. 그러나 다중지능이론은 우리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인지하고, 반영되어, 평가로 이어지고 있을까? 아마도 교육 현장에서 그의 이론이 중요하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 전환 요구와 함께 교사 개인의 변혁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나름 공교육을 변명해보자면 겁나 빠른 사회변화 속도가 이를 반영한 교육 시스템을 검증하고 표준화하는 과정(시간걸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데 있다.(교육 구조는 기존 지식의 보존과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기능 때문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변화에 가장 가변적이고 융통성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시스템 바깥의 지원 영역, 소위 사교육영역’이다. 우리가 사교육 하면 학원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게임/스포츠/클럽활동 모두를 포함한 개인의 자원을 투자하는 영역이다. 아이의 개성을 관찰하여 발견하고,  특성에 맞는 과정을 찾고, 선별하여 제공하는 일련의 과정을 주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부모/보호자의 역할이다.   적극적인 부모는 일련의 과정에  참여하여, 지지하고 지원한다.(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런 노력은 아이의 배움에 큰 영향을 끼치고, 격차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자녀의 성격과 특성을 염두에 두고 참여하면 할수록, 부모의 역량도 그 이상을 요구받게 된다. 즉 역량의 확대가능성이 실험대에 오르게 된다. 요즘 여기저기서 진행되는 부모 교육프로그램의 내용을 살펴보면 공교육의 한계점과 이를 극복하는데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계몽적 측면과 부모의 역량 강화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학생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으며,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적 계층, 가족 배경과 구성원의 역량에 따라 자녀의 역량 계발에 대한 참여 방식이나 양, 질적 차이도 심화된다.

 과거를 돌아보면, 동네 어르신들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를 가족처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입시철, 고시철이 끝나면 동네/학교마다 플래카드가 펼쳐지곤 했다.) 거기에는 지역사회의 윤리, 가치의 측면이 반영되어 있다. 아이들의 삶에는 동네 선후배 사이에 학습지도가 이뤄지기도 했고, 좀 살던 형네 집에 있던 책들을 빌려 읽기도 했다. 동네에서 이뤄진 놀이는 환경에 따라 변형하는 창의력과 리더십을 제공하였고, 6-7살부터 마을 경계를 넘어 산과 들을 자율적으로 선택하여 공간확장을 경험하기도 했다. 부모는 가족 구성원으로 해야 할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마을 사회의 흐름에 맡기면 되었다.  부모에게 교육 압력이 높지는 않았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좋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과거 사회에서는 부모의 역량과 상관없었던 영역들이 현대 사회의 부모에게 몰리고 있음을 언급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강화된(되어야 할) 부모의 역량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는 재능뿐만 아니라 이를 실현할  있는 경제적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맥들을 활용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부모 교육을 하면서 처음과 전혀 다른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소위 ‘계급세습’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다. 우리는 자신의 환경/배경은 노력의 결과가 아닌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소유처럼 활용한다. 그리고 그 과정/결과로 형성된 네트워크 역시 자신의 일부가 되며, 자연스레 자녀를 양육하는 가운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일종의 세습 결과로 인지되면, 윤리적 측면에서의 죄책감과 정당성이 동시에 들어온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서, 국가가 전적으로 그 미래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아닌 이상, 부모는 법적인 한계안에서 활용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신의 역량을 벗어난 시점에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최대한 동원하여 자녀 양육을 이룰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렇지만 그런 결론으로 부모교육을 마칠 수 없다. 적어도 나의 목표는 철학의 측면에서 재분배’, ‘사회화라는 공동체적 책임을 강조한 용어에 머물게 된다. 대학이든 교육이든, 현대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미래사회의 인재상을 구성하는 핵심 요인은 아마도 유연성 연대(network)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이야기는 다른 꼭지로 다뤄야  부분이다.) 그렇기에 부모의 역량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현대 사회에서, ‘연대 부모의 네트워크가 가진 경험으로 이어지는 확장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인식하던 아니던 간에 아이의 자발성과 동기부여, 인내의 영역 모두에 영향력을 준다. 한 사람의 성공을 역으로 추적하게 되면,  결과가 한 개인의 자발적 활동의 결과일지라도, 그곳에서 주변 사람들 후광을 찾는  그리 어렵지 않다.(부모가 전혀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그런 원인과 과정을 배제하는 길보다는 결과적인 측면에서의 책임성을 좀 더 강화하고 과정에서의 정당성을 강조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보이지 않는 주변의 도움들을 의미하는 '사회적 빚'에 대한 책임론을 부여한는 쪽으로 기울어졌고. 다행히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해나 다양한 연대를 통한 재분배 논의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기에 부담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자녀 양육에 있어 역량강화 영역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의를 받는 분들에게 강의 마지막에  정치는 하지말라’라고 첨언해야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