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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TCK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논문을 앞두고 여러 생각과 고민이 있는데, 하나는 소위 TCK 국가정체성을 어떻게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있다. 지난 20년간 소위 국제 노마드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상징화된 개념은 점차 Cross Cultural Kids 개념을 상위에 두고, TCK 하위에 두는 형태로 변화를 꾀했다. 그 배경에는 국제 사회내 이주노동자의 확대, 그리고 대규모 난민의 발생에 따라 비이민국가들도 이주의 형태가 두드러진 상황이 지속되고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TCK 갖는 일종의 경제/신분적 계층화를 얼마나 극복했는지에 대한 논의 없이 이렇게 전환을 꾀한 전적으로 미국적 배경(이민국가, 다민족, 다인종주의)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이런 담론을 다루기에는 전혀 다른 배경, 즉 비이민국가, 민족주의적 정체성에 뿌리내린 국가 정체성으로 존재한다. 게다가 국가 정체성의 하나인 민주주의는, 왕정시대에서 민주주의라는 근대화의 정치적 변화를 외세의 개입 속에서 이루었다. 그 결과 한 개인, 집단을 설명할때,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서, 보편적인 개념으로 설명되는 것과는 다른, 뚜렷한 괴리감을 갖게 되었다.(한국인이라는 개념을 정치적 원칙에서 보자면 한 개인을 독립된 자아로 보지만, 문화와 관습에서는 집단의 눈치를 보는 구성원에서 오는 괴리감) 그 결과 재외동포를 다룰 때 '속인주의'를 적용하지만,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인종과 타문화배경의 내국인, 한국국적의 이주여성들을 대할 때면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이런 배경에서 소위 TCK라고 불리는 MK는 한국 사회가 대하는 방식에 있어서, 상황/매락에 따라 달라져 문제를 만든다. 이들의 한국사회화에 대한 책무가 개인에게 부여된 것인지, 집단에게 부여된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다만 관습적으로 볼 때 배타적이며, 내국인 중심이며 동화주의적이다. 여기에 이런 가치 결정의 기준을 하는 것을 '국가정체성'이라 부를 수 있다. 어쨌든 나의 경우 과거에 다양성에 관하여 공부할 , 윤리적 측면에서 국가 정체성을 판단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다문화주의는  ‘동화주의 인종주의적인 측면에서 비윤리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나는 거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있다. 최근 사회 다양성에 대한 국가정책에 대해 영국 경제학자 콜리어나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백은 동화주의나 다문화주의을 윤리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국가형성의 측면에서 하나의 경향으로 읽어낸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문제를 정치적 측면에서 게으른 결과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국가의 사회정책이 국가, 집단의 역사적 측면을 간과하고, 현상을 개선하려는 배경에는 정치적 당략이 자리하고 있음을 경제적인 측면(폴 콜리어)에서, 또는 사회적 측면(울리히 벡)에서 다룬다. 덕분에 보편주의나 세계주의적 측면에서 사회내 다양성을 온전하게 수용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 결과 우리의 입장에서는 동화주의라는 측면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과정을 진지하게 다가서는 여유를 제공한다. 

MK 대한 논의로 돌아오면, 그동안 사회 안에서 적응하는 과정의 책임을 마치 사회와 교회가 함께 짊어질 것을 요청하거나 응답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회에 진입하려는 MK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해왔다. 형식적으로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자주 언급하고 그들의 지원과 도움을 요구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회로 진입하는 개인(청소년)들의 역량에 의존했다. 결국 TCK라는 하나의 개념을 집단화하고, 이들을 문화적 특징으로 정의하는 이른바 다문화주의적 방식으로 문제를 대면하려 한다. 이것은 양날의 검처럼 작동한다. 사회로 진입하는 재외거주 청소년들을  집단의 특징 속에서 접근할 경우, 상호간의 동질감과 격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을 만드는데 긍정적이지만, 이런 소수화 전략은 게토화 될 가능성이 높다. 그 예로 1990년대 초반 유행했던 ‘오렌지족’은 사회내 부적응자로 강조하며, 그들의 약한 애국심에 대한 선입견, 사회 통합 분위기를 방해하는, 일종의 낙인효과로 나타났으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우기 TCK의 소수집단화는 구성원들이 주로 국외에서 들어오기 때문에 정치적이지 못하며, 집단내 개인을 보호할 힘이 없다.

그러므로 한국사회로 진입하는 이들에게는 한국사회의 특징, 동화주의적 사회임을 인지하고, 재입국으로 겪을 문화적 갈등을 하나의 사회내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은 과거에 재입국을 하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과 차이가 있으며, 긴 호흡 속에서 접근하는, 이른바 '사회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진입하는 청소년 개인에게 그 책임을 모두 전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책임을 한 사회 전체에게 부여하는 것이며, 그 결과도 사회의 몫으로 읽어야한다. (다만 선교단체와 같은 집단의 돌봄 영역에서는 기존의 이야기와는 다른 일종의 책무가 존재하며 그 논의는 사회화와는 다른 결의 이야기기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