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u in Diversity

2020년 2월 11일 MK연구 단상

MK사역과 관련된 글을 준비하다보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자료들이 있다. 그 하나는 MK NEST에서 발간한 저널과 박순남 선교사가 모아 편집한 MK핸드북, 그리고 폴락 부자와 벤레켄의 공저 TCK다. 그러나 이런 출판물이 있기전에도 그들의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은 찾기 어려운 초기자료를 살펴보면 백인숙 선생님같은 전문가 이전에 등장하는 분들은 이태웅 목사님과 김동화 선교사님이다. 이분들 덕택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조금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즈음은 선교한국의 출범과도 맞물린 시기이니... (선교한국-죠이선교회-이태웅-GMF... 뭔가 애증...?)

특히 이태웅 목사님은 다른 기술가들과 달리 당시의 선교적 정황을 설명하시는 글들을 통해 MK에 대한 논의 정황등을 언급하셨다. 그 예를 보자면 1984년 ICMK를 언급하면서, 비영어권 MK에 관한 국제적 논의가 있었다는 점을 밝힌 것(선교연구 2호 ""한국선교사 자녀교육" 이대로 좋은가")이나, 1990년 KOMF 10주년 대회에서, 91년 GBT에서 자녀에 관하여 논의했던 경험들을 언급하면서 1993년 "한국선교사 자녀교육 정책 협의회"의 밑거름이라는 점 등이다. (선교연구 26호"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의 방향성") 내부자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웠던 논의를 GMF에서 다루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료 접근의 기초를 주고 있다. 1990년대 선교사자녀 관련 연구들의 기초 자료들은 선교부에서 발간한 저널들이 있었지만, 이론적 접근에 있어서는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점이 여러모로 아쉽기만 하다. 그 당시의 정황을 보자면 선교동원이 시작되던 시기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덕분에 나같은 사람들이 뭔가를 이야기할 꺼리를 제공한다는 점이지만.

왼쪽이 Ruth Van Reken, 오른쪽은 David Pollock 아들인 Micael Pollock. 2019. 11. 10. 치앙마이에서

작년 11월에 TCK공저자들인 룻 벤 레켄과 마이클 폴락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궁금했던 이론적인 부분들을 질문했었다. 그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서 이론적 토대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서로 동의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솔직히 어디서 시작해야할지는 모르겠다. 그 대화들에서 나왔던 인상깊은 비유는 '사일로'다. 기독교 생태계가 일종의 비닐하우스처럼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논의의 맥락을 현실과 동떨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벤 레켄은 그런 면에서 계속 배우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앞으로 연구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 부분이다. 다만 한국 내에서 선교사자녀에 관한 논의들은 아직도 실용적인 측면에서 논의되는 수준이다. 내가 발견한 고대적(?) 연구 주제들은 MK의 교육 방법에 관한 부분이고, 지금도 그 정도의 이슈에 머물고 있는게 여러가지로 안타까울 뿐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 선교의 생태계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일련의 역사들 속에서 한 부분에 참여했고, 덕분에 지금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에서 깊게 배운 한가지가 있다. 하나의 개념이 자리하는 지리한 과정 속에 많은 이들의 수고가 있다면, 동시에 그 자리잡음으로 인해 마치 알껍질처럼 하나의 단단한 경계를 만들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개념에 침착되고, 그 속에 숨어버리도록 만드는 부작용을 만들었고, 동시에 알껍질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고가 필요하고, 때론 고통도 필요하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