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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사람의 본질은 타고난 걸까? 아니면...

예전에 보았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타고난 모짜르트의 모습에 질투에 가득찬 살리에리의 대립은 자녀를 양육하는데 고민을 던졌다. 영화에서는 유전자 자체가 탁월한 모짜르트는 나름의 재능과 엄청난 연습으로 궁정작곡가 자리에 오른 살리에리를 항상 좌절케 하여, 유전자 절대성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사실은 어떨까?

아이들의 성장에 대하여 존 왓슨이나 스키너는 환경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크게 보았다면 행동유전학자들은 유전적 요인의 절대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대립은 사회의 구성과 적응의 요인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고 또 그 기저에 깔린 철학/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하는 일종의 정치성을 띄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아직까지도 작동하고 있는 인종주의와 문명론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우리는 종종 열심히 하면 '이룰 수 있다'는 신화를 강조하며 반복되는 연습을 밀어붙인다. 반대로 '넌 누구를 닮아서...'라며 자녀의 특정 문제를 유전자의 측면에서 다루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는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 부모의 유전적 요인에 따르는 특징들을 장단점으로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노력의 범주이며, 유전자의 범주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노력과 유전자 사이의 상관관계는 증명가능하지만, 인과관계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살리에리는 그의 노력이 부족해서 모짜르트에게 밀린 것일까? 아니면 그걸 즐길만큼의 여유가 없어서 음악적 소양을 증진시키지 못한 것일까? 애초부터 비교불가능한 요인들로 서열을 매긴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인걸까?

나의 자녀를 바라보면서 살리에리와 모짜르트 사이에 존재하는 양육의 갈등을 생각한다.

내 아이들은 생긴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좋은 기술과 지식들로 채워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