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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번역]패트리어트 게임: 비판적 인종이론, 기독교 민족주의, 그리고 미국의 진정한 진리를 위한 싸움

인종, 인종주의, 그리고 권력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해방과 사랑의 길보다는 그들의 믿음과 조국에 위협이 된다고 믿고 있으며, 그 자체로 백인성을 숭배해 온 것이다.

수요일이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인도하며, 강당 앞에  있다.  입에서는 방금 마신 커피 냄새가 느껴진다. 미국 국기는 오른쪽 어깨 뒤에 있다. 그것은  학생들이 종종  있으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똑바로  있다. 반대편에는 기독교 국기가 있다.

우리는 기도로 시작하고, 충성의 서약을 이어간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국가 순서가 나오면, 나는 손을 가슴에 올리지 않는다. 이건 저항이 이니다. 정말로. 그리고 아직. 나에게 그것이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런 헌신의 외형들에 강요받지 않는다. 

성조기, 심지어 애국가조차도 많은  흑인 형제 자매들, 또 나를 위한 아름다움이나 용기, 그리고 자부심의 상징이 될  없다. 그것들은 우리를 공격한 잔인한 유산을 상징한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춤과 외침에 담겨진, 우리들의 노래 속에 기워진, 우리의 몸에 새겨진 유산이다. 나는 성조기의 별들과 줄들 속에서 열정적인 희망을 보고 싶다. 하지만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보다 벗겨내는데  집착하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힌 나라에서 이런 애국의 상징들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다. 

미스터. 스튜.” 며칠 전에 제자   명이 내게 말했다. “ 깃발을 향해  손을 들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내게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우릴 죽였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은 그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세상을 식욕, 생각, 그리고 마음 속으로 도망친다고 사람들 사이에서 종종 언급되곤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 우리 차이를 알고 있었고,   단어 사이에 분노, 비통함, 실패와 약탈에 대한 모든 것들이 있음을 알았다.

저는 그냥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말했다. “단지 그럴 기분이 아니예요.”

나도 그것을 이해했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8학년의 흑인 여학생이 기독교 사립학교 안에서, 미국 정체성을 기독교적 정체성에서 탈피할  있는 것을 하고, 그녀의 인권의 가치를 선언하는 것으로 치뤄야 할 댓가를 나는 알려줘야만 한다. 

예배가 끝나고, 나는 교장실로 불려갔다. 

2018 그때에 깨달았어야 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비판적 인종 이론 대한 오늘날의 엄청난 공황에 놀라지 말아야 했었다. 인종주의, 인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예수나 국가에 대한 충성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백인 우월주의에서 발현된 충성(devotion)이다. 그리고 권력과 고결함 대한 이념들이 종교적 충성으로 그 단계가 올라가면, 거기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1963 제임스 볼드윈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해해야만 합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악의와 잔인함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할 때,  여러분에게 가장 놀라우면서도, 가장 잔인하고, 가장 격렬한 저항을 만나게   것입니다.”

미국인은  나라에 대한 병든 사랑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백인, 비남성, 비기독교인, 비이성애자들이 결코 상상할  없을 강력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볼드윈은 미국의 정체성을 향한 미국의 영광, 순수함, 거룩함에 대한 일련의 신화가 미국의 백인성(Whiteness)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이런 신화는 매우 강력하고, 매우 끈질기며, 매우 치명적이다.

미국인은 단지 흑인들에게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흑인)들에게 적대적인 현상을 유지하는 시민권자들만을 원한다고 배우는 것, 그것이  미국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것들에 비판적이길 원하지 않는다. 

백인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체계적인 인종주의가 이론화되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중심성과 내재된 권력, 그리고  그들이 그들 스스로 갖게  신과 동등한  등과 같은 오만한 그들의 생각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볼드윈은 맞았다. 그들의 무지함은 그들에게 힘을 준다. 볼드윈은 “ 같은 무지의 원인은  사람들이 미국 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는 것이 미국인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보다 미국에 대해  많이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라고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교육은 항상 전쟁터 가운데 있다. 이들은 결코 무지하지 않으며, 교육과 해방이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함께 가는 것 임을 알고 있다. 그동안 백인성은  자체에 관해서, 그리고  이야기는 항상 백인의 승리로 끝나야 하고, 우리(흑인) 이야기는 백인이 주도하는 세상에서 지배받으면서 결국 흑인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백인성은  이상 그런 설명없이 숨거나 도망가거나 설교하거나 섬기거나 주거나 기도하거나 기록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을 조정하는 그들이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이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보다  해롭다고 믿을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자유로운 것보다 거짓의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들은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보다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샤디야 하트만(Saidiya Hartman) 이런 시간을 노예의 시간이라 이야기한다. “ 말은, 내가 그것으로 인해 창조된 미래를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진행중인 시민권의 위기죠.” 그것은 우리가 단지 생존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백인성이 우리(흑인) 저주로 여겼을 순간에도 우리를 위한 세상을 만들었던 방법들, 그리고 흑인들의 이야기들을 믿거나 혹은 수용하는 것을  국가가 거부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백인성을 숭배해왔던 그들의 정체성때문에, 인종, 인종주의, 권력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사랑과 해방의 길보다 그들의 나라와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길거리를 걷는 커플을 지켜보고,  아들은 기차를 가지고 놀고 있다.  방은 라벤더와 콰테말라 커피, 그리고  아들이  전에 먹었던 망고 냄새가 난다. 바깥은 너무 덥고, 태양은 불타고, 조지아의 더위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트위터를 훑으면서 흑인 올림픽 선수 그웬베리를 올림픽 팀에서 빼라 폭스뉴스  크렌쇼의 트윗을 넘겼다. 사회자는 베리가 어떻게 깃발에 등을 돌렸고, 어떻게 우리가  이상 운동가 운동선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리  단어. “우리 대한 그들(백인) 정의 가운데 우리(흑인) 포함시키려고 애쓰는  나라의 방식.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혼자 놀고 있는  아들에게  시선을 돌렸고, 내가 쓰는 이들 단어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을 유령처럼 만드는 나라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날, 나는  어느때보다  알고 있다. 나는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을 알고 있다. 나는 우리가 되어야만 하는  어떤 것을 안다. 나는 안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겁박하고, 슬프게 만들며, 때때로  미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신화나  이야기,  세상, 또는 나의 복음이 백인들이 정당화하고 행동하는  분노의 백인성과 다르다는 것도 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우리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진리다. 

Danté Stewarts  아틀란타 에모리 대학의 캔들러 신학대학의 학생이자 작가다. 

출처: RNS. 2021. July 2. Patriot games: CRT, Christian nationalism and a battle for the real truth of Amer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