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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국제결혼 속에서. 한국적이란 건 뭘까?

유튜브에서 가끔 만나는 체널들, 이것 말고도 많이 넘친다.

유튜브에 일상의 영상들이 꽤 많이 올라온다. 일상의 삶을 소재로 삼기 위해서는 보통의 가정보다는 귀농이라든가, 해외에서의 삶이나 여행 같은 조금은 비일상적인 조건이 필요해 보인다. 그 가운데 국제결혼의 사례들이 눈에 띈다. 연애에서 결혼, 그리고 출산과 육아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 영상들이 제법 자주 보인다. 이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다양한 삶의 방식과 문화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일 것이고, 삶의 물리적 영역도 한반도를 넘어 세계 곳곳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적’이라는 개념은 점점 더 복잡하게 소통된다. 예를 들면, 한국 문화를 그대로 현지에 이식한 형태, 현지 문화와 결합된 한국 문화의 결과, 한국 문화 안에 현지 문화가 결합된 형태, 그리고 현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 등으로 대략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나누면 각 가정의 방향성이나 자녀 양육의 그림을 그릴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각 가정의 구성과 환경, 삶의 맥락에 따라 서로 중첩되거나 예외적인 지점들이 너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본인의 배경이 현지 문화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따라 한국 문화와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배우자의 배경도 한국 문화와의 관계성에서 다른 결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유학 온 사람을 만났는지, 아니면 본인이 해외 유학 중 현지 사람을 만났는지, 혹은 둘 다 제3국에서 만났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도 변수가 또 생긴다. 본인이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한 번도 한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외국 국적을 가진 배우자가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자라며 한국 문화를 깊이 체화한 경우도 있다. 이런 식으로 문화적 차이를 기준으로 조합을 상상해 보면 수백, 수천 가지 경우의 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결국 ‘한국적’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닿게 된다. 고정된 범주도, 완전히 유동적인 개념도 아니다. 분명한 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아래,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응축된 감정, 혹은 향수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는 이를 유전적 감각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적’이란 것은 특정한 문화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관계 맺기 방식, 익숙한 리듬, 몸에 밴 삶의 태도 같은 감각의 층위다. 김현경의 말처럼, 정체성은 제도나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환대받고 인정받는 관계에서 구성된다. 그 인정은 언어로 설명되기보다 감각으로 체험되고, 존재의 자리를 결정짓는다. 이 지점에서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구성되고, 맥락에 따라 조정된다는 사회학적 관점이 떠오른다. 최정운 역시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이성적 분류가 아니라 정서적 공동체 의식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조국’이나 ‘민족’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그 감각이 실재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결국 ‘한국적’이라는 것은 제도적 정체성이 아니라, 살아낸 기억과 감정, 가족과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형성된 감각이다. 설명되지 않아도 통하는, 말보다 먼저 감지되는 어떤 분위기, 혹은 기운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유튜브 속 국제결혼 가정의 일상에서 ‘한국적’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는 것도 단지 문화의 전파나 정체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 감각이 어떻게 전달되고 유지되며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의 장이기도 하다. 가정 내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어느 쪽의 명절을 기념할 것인지 같은 일상의 작고 사소한 선택들이 결국 누가 누구로 자라는가를 결정하는 기반이 된다. 그렇게 구성된 ‘한국성’은 한 가지 형태로 수렴되지 않고, 가족마다, 개인마다 다르게 발현된다.

결론적으로 ‘한국적’이라는 것은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그 이야기의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구성되는 유동적인 개념이다. 다시 말해, ‘한국적’이라는 것은 대화의 주제와 맥락, 그리고 대화 상대의 집단적 위치에 따라 일시적으로 명확해질 수는 있지만, 결코 고정되거나 표준화될 수는 없는 개념이다. 그것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구성되고, 감각되며, 실천되는 것이다.

‘제3문화(Third Culture)’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도 벌써 7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정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모호한 개념임에도 자신을 제3문화 아이 혹은 제3문화인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은 ‘모국’이라는 개념뿐 아니라, ‘문화’라는 말 자체가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며, 상황과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불완전한 개념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려 한다. 테드워드는 제3문화를 ‘미래 사회 시민의 원조’라고 불렀는데, 이는 현대 사회의 이동성과 국가 간 경계의 흐려짐을 생각해 보면 여전히 유효한 면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개념은 근대적 질서, 즉 도시에서 국가로 이어지는 명확한 경계 인식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의 균열 속에서 이 개념은 언젠가 폐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제3문화라는 개념은 국가, 민족, 인종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할 때에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미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모국과 현지라는 이분법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라면, 제3문화는 실질적으로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닌가? 어쩌면 이런 의문은 단지 제3문화를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두고 있는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롯된 물음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국, 민족, 정체성에 대한 애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 모호함 속에서도 여전히 ‘모국’이라는 말은 살아 있고, 그것은 사람들의 감정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국제결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의 모국은 어디일까? 엄마로부터일까, 아빠로부터일까? 혹은 그런 관계 자체가 모국을 정해주는가? 아니면 가정 안에서 보다 지배적인 문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까? 결국 이 역시 각 가정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모국’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연구자, 혹은 정의자의 목적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이 개념은,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며, 그만큼 오해도 많이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정치적 의도를 띠고 쓰이기도 한다.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종종 막막하다. 하지만 특정 계층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할 때에는 오히려 훨씬 선명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때 대화의 중심은 ‘민족’, ‘모국’, ‘문화’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단위로 전환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3문화를 부정한다. 아니, 좀 더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현대 사회의 일상 자체가 이미 교차문화적이고, 매일의 삶이 곧 넘나드는 경계의 일상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글. 

 

재외국민자녀의 재입국, 사회화

*원글은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했고, 다시 개인 블로그에 옮긴 글을 가지고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청소년기의 사회화는 개인의 성장 발달과제를 풀어가는 것과 연계하여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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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럴드스코틀랜드 What it feels like to ... be a third culture kid Faye Richards 저는 네덜란드와 미국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지만 한번도 두 나라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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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범주화보다는 공동체성 회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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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주의와 TCK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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