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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내가 선교사라고 느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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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에서 만난 아이들

내가 밟고 살았던 땅의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면서 두눈에 그리움의 눈물이 솟아 오를 때.
한국에서 어쩌다 만난 외국인이 내가 살았던 국적의 사람임을 알고 반가움이 솟아 오를때.
한국의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 거리가 낯설게 느껴질 때.
커피숍에 앉아 있을 때 외국인들이 옆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깨닫게 될 때.


한국을 다시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결혼도 했고, 어느정도 한국 생활에 적응되어가고 있다. 가끔 낯설게 느껴지던 버스타는 일도 익숙해지고,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주절주절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다. 그런데...
가끔씩 만나는 남아공 소식이나, 중앙아시아의 소식을 보거나 듣게 될 때, 향수가 밀려온다. 내가 남아공에서 느꼈던 한국에 대한 향수처럼. 가슴이 시리고, 답답해 오기도 한다.
물론... 그건 한순간이다. 하지만 막상 떠날 생각을 하게 되면, 무게가 느껴진다.
선교라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모른채 덤비던 열정으로 쉽게 떠나던 때가 오히려 그리워진다.

 누구는 선교를 부르심이라 이야기한다.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사실 선교라는 걸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우리의 삶의 지역이 낯선 타지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소명이 있어야 움직일 수도 있지만, 사정상 때로는 감정적인 이유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선교라는 걸 조금 더 전문적인 사역의 일부로 볼 땐 다르겠지만 말이다.
 선교라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고 움직이는 것을 또 다른 성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가 우리에게 준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인 이익이 아니라 더이상 국제적인 이동이 낯설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오지로 가지 않는 이상 한국의 문화와 음식을 접할 기회는 존재한다. 그러니 많은 이들에게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 수 있다. 중국인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의 먹거리가 한국과 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다. 세계의 어디로 가든 이동은 더이상 어려운 행동이 아니다.

 나는 김치가 없어도 살 수 있다. 현지의 기름진 음식에도 한껏 기분 좋게 차이 한잔으로 소화해 낼 수 있다. 냄새난다는 양고기를 돼지고기나 소고기보다 더 좋아하며 먹을 수 있다. 김치찌게나 된장찌게도 좋지만 커리가 잔뜩들어간 양뼈 스프도 맛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그런 현지 음식들이 생각난다.
 
 그런데... 점점 두려워진다. 떠난다는 것, 선교사로 나간다는 것... 뭔가 모르게 두려움이 생긴다. 예전과 같지 않다. 내가 처음 떠나기로 결정했던 순간이 왜 그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누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생활이 어딘지 어색한 나에게는 한국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 같다.  가족과의 삶은 너무 즐겁다. 그럼에도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나에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
 두가지 모두 공존하는 이곳의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이 선교사의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