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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사사기 9장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8장 후반부에서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가족들이 죄를 짓게 만드는 덫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9장에서 등장한 아비멜렉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결국 모든 시작의 근원은 기드온의 에봇때문이라는 것인데, 기드온 일가의 몰락과 이스라엘의 타락이 기드온의 에봇이라는 것은 아마도 에봇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에봇은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이스라엘을 도우신 이유를 살펴볼 수 없다.
 기드온이 그의 인생의 말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아내와 70명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은 우리에게 약간의 정보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70인의 지도자를 둔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는지 모르겠다. 이스라엘의 기드온 가족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연관된 것으로 성경은 묘사한다. 그 결과는 첩의 아들이었던 아비멜렉의 반란으로 나타났다.
 기드온의 이야기에서 아비멜렉과의 관계에 대해선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세겜 출신의 첩의 아들이라는 것이 하나의 단서가 될 것같다. 세겜은 아비멜렉의 반란에 참여하여 기드온의 형제 69명을 죽이는 일을 지원하였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섬겼다.

세겜의 욕심
 세겜은 기드온이 생전에 했던 약속, '자신은 왕이 되지 않겠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았고, 기드온의 가족들을 좋게 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비멜렉을 지원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따랐기 때문이다. 결국 69명의 무고한 피를 흘리는 일에 참여했다.

아비멜렉의 등장-하나님이 없는 힘의 논리
 아비멜렉의 왕이 되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 왕이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아비멜렉이 왜 왕이 되고 싶은지를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세겜과 아비멜렉은 마음이 통하였고, 세겜의 지원으로 아비멜렉은 왕이 되었다. 당시 세겜은 종교적 지리적 요충지로 알려져 있고, 다른 가나안 지역에 비하여 부유한 곳이었다. 그것으로 미뤄 볼 때,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얼마되지 않아서 깨어졌는데, 거기에는 세겜의 정치적 분란때문으로 보인다. 어쨌든 세겜은 자신들의 힘을 믿었고, 그 힘을 기반으로 아비멜렉의 통치권을 벗어나려 했다. 정치적 분란은 결국 세겜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힘을 기반한 정치의 종말이다.
 그 승리를 기반으로 아비멜렉은 데베스성을 치러가서 승리의 정점에서 어이없게 한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 죽게 되었다.
 아비멜렉이나 세겜 모두 자신들이 지닌 힘을 의지하여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했다. 힘을 의지한 그 결과는 모두의 멸망으로 끝났다. 이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표면적으로 등장하지 않으신다. 그들의 활동에 있어서 하나님은 그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 않게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을 기반으로 판단을 통해서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에 심판자 하나님이 개입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의 불행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무지였다. 이 사건은 단순히 아비멜렉과 세겜의 사건에 등장한 인물들의 상황이 아닌 바로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 즈음해서 이스라엘 내부에 왕정에 대한 욕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사사기가 이스라엘의 왕정을 시작하기 위한 서론격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 대신에 자신들을 지켜줄 물리적인 군대와 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는 '하나님'대신에 가나안과 그 주변의 정치적인 힘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생존을 위한 이스라엘의 몸부림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논리에 맞아들어간 인물이 아비멜렉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몰랐다. 하나님이 그 순간에도 개입하고 계셨음을...

인본주의-인간의 욕심을 채우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더니즘의 등장은 기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보나 큰 변화를 가져왔다. 모더니즘은 인간에 대한 재발견이며, 이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신은 이성의 판단으로 판단될 존재로 전락했다. 신의 윤리도 이성의 윤리로 바뀌었고, 신의 기준들이 이성의 결과물로 대체되었다. 모두들 세겜처럼 그들이 가진 것으로 세상을 바꾸고 생존하고 싶어했다. 세겜의 행동은 이미 창세기의 바벨탑사건과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싶어했다. 생존은 본능이다. 그러나 생존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이 빠진다면 그들의 생존은 절망과 불안이다. 그 불안을 매꾸기 위해 이성은 판단하여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의 논리다. 모더니즘은 이성을 통한 모든 활동을 격려했고, 그 결과 많은 산물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힘을 지지해줄 기반이 되었고,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되었다. 그것은 지킬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종속시키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자신에게 찾아오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되었고, 그들이 믿었던 이성도 인간이 가진 욕망에게 휘둘리게 되었다.
 인간의 욕심은 결국 이성에 대한 절망으로 찾아왔다. 그럼에도 욕망은 인간을 끊임없이 질주하게 만든다. 브레이크없는 욕망...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다.
그의 마지막은???                                            세겜과 아비멜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