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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ge of Life/삶의 언저리

사사기 8장 성공의 결과물-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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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이야기 배경지역


 에봇의 등장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구원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면서 전리품때문이었다.
전리품가운데 이스마엘후손들이 가지고 있던 금귀걸이는 기드온에게 있어서 무엇이었을까?
그것으로 에봇은 종교적 행위를 실행하던 이들이 갖춘 의복의 일부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제사를 섬기던 레위인 제사장들만이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드온은 에봇을 이스마엘 후손을 들먹이며 만들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불가능한 전쟁을 승리했다는 것의 상징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출애굽이후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모세를 기다리다 지쳐서 만든 금송아지 우상과 사뭇 비슷하다. 모두들 승리의 상징이며,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이었다. 승리에 도취되었고, 그에 따른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시점이었다. 그것은 27절에 따라오는 저자의 평가에 드러난 사실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여러가지의 사건과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념하길 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육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르치지 않은 방법으로 상징을 부여하려 했던 행동은 모두 우상숭배로 변질되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부여행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기질이기도 하지만 타락 이후에 종종 타락의 원인자가 되기도 했다. 기드온의 상징물은 결국 하나님이 의도하신 관계 회복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유익과 만족을 채우는 것으로 끝났다.

 기독교 교육에 있어서 성과물은 우리의 유익과 만족으로 흐르는 성과중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기독교 교육은 인본주의 교육이 줄 수 없는 자존감, 소명, 그리고 협력의 공동체를 탁월하게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의 탁월성은 기독교 교육의 본 목적이 아니다. 이 사회를 개선시키고 구조를 보다 살기 좋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교육은 하나님 그분과 우리와 그분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 사이의 관계회복의 연장선 상에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탁월성을 증명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기독교 교육이 타 교육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교육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해가는 성화의 과정을 전방위적으로 이끄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드온의 에봇이 주는 교훈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과정을 성취하고도 그분의 의도와 빗나갈 수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본심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한다. 종종 우리역시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본심보다 그 일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을 갖는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며, 우리의 교묘한 죄성이 탁월하게 발휘되어 우리를 그분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