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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아랫목에서 찾게된 MK의 삶-인요한씨의 글

 "아랫목"이란 말은 정겹다. 하지만 아랫목이란 단어가 사라진지는 오래...
아랫목은 요즘 같은 겨울엔 딱이다. 항상 이불로 덮혀 있고, 그 아래엔 저녁밥이 놋그릇에 담겨 있다. 좀이라도 몸부림치며 장난칠라면 엄마는 "야, 밥 엎어진다."라고 혼내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 새록하다.

대가족 사회에서 아랫목은 언제나 어른들 차지였다. 손주가 있으면 그곳은 손주들의 놀이터다. 교육은 그곳에서 이뤄진다. 지식과 말하기, 예절 모두가. 한국 사회의 대가족 분화는 교육의 주체가 가정에서 학교로 완전히 이양됨을 의미했다. 전통적 가치 교육은 학교와 가정이 상호 신뢰 속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사회로 이동되면서 사회 가치가 교육의 핵심이 되었다. 즉 국가의 가치관이 마을 공동체 가치관보다 우선시 되었고, 가정의 가치관보다 우선시 되었다. 한국에서 서구의 가치관이 전통적 가치관보다 우위를 점한 것도 바로 이런 시간의 변화를 겪으면서라고 생각한다.

국가 가치관은 좋은 의미에서 전통적 가치관의 통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는 정권의 가치관과 인본적 가치관이 모든 가치관을 통제했다. 인본주의의 핵심, 유토피아 건설이 교육을 통해 이뤄질 수 있음을 믿었다. 유토피아 환상은 정권을 가진 이들의 선전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결국 오늘날 사회의 교육문제는 이런 기반으로 성장한 결과다. 문제는 바로 유토피아 환상이 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으로 다양한 가치가 사회 안에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은 여전히 근대적 가치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더 웃긴 것은 교육이 고상한 단어들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는 소비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자본주의에 지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요한씨의 글은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이 난관을 풀어야 할지 말하고 있다. 물론 대가족 제도, 가족 중심의 교육이 해답이란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가치, '존중', '함께 삶', '가족'들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의 난관을 풀어가는 실마리가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