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의 내용은 단순하다. 한글이 한류 붐으로 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글은 참 오묘하다. 소리나는대로 쓸 수 있는 언어다.(표음문자라고 한다.) 그럼에도 어렵다. 몇가지 법칙이 있기 때문이고, 받침이 두개가 올 때 오는 불편함도 있다.
한글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 것 같다. 하나는 표음문자로서의 한글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어로서의 한글이다. 최근 이 두가지 구분은 타언어에 한글을 사용하면서 구분되는 것 같다. 원어적으로 본다면 한국어가 곧 한글이겠지만 말이다.
언어의 대중성은 언어의 편의성과 관계없는 "세계 정복"과 깊은 연관을 갖는다. 지배와 통치라는 환경에서 언어의 확산은 이뤄졌다. 전쟁과 정복은 언어의 확장을 가져왔으며 영어의 세계화는 그런 역사의 증명이다. 실상 영어는 세계 언어 사용 1위는 아니다. (중국어 1위, 스페인어 2위, 영어 3위) 그럼에도 영어가 오늘날 세계 중심어가 된 이유는 아마도 2차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패권 구도가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확장을 "탁월성"이라 의미한다면 한국어의 "탁월성"은 한국이 "강자"가 되려는 야심을 은연중에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언어는 문화를 갖는다. 한국어을 배운다는 것은 한국을 배운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는 틀을 갖게 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자국에는 없는 표현들을 배우고 사용하게 한다. 언어는 단순하게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이 아닌 감정과 느낌, 더 나아가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관을 담도록 한다. 그렇게 발전된 각각 언어들을 어떤 기준으로 탁월성을 매길 수 있다는 걸까? 과거 라틴어/히브리어처럼 종교적 언어이기에 탁월성이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여기서 "탁월성"은 인종적, 문화적 우위를 주장하는 교만함의 증거다.
한류와 한국어 붐은 한국이 그만큼의 위상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은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문화적 친화성을 내포할 뿐이다. 비공식적인 라인이긴 하지만 한국 안에는 미드/일드가 대중적인 호응을 오랫동안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미류, 일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 영향력에서 한국도 영향력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다른 분야에서 "세계," "최고," "독보적" 이라는 형용사를 난발하는 것도 '이제는 우리 한국을 봐줄만 하지 않니?'라고 인정받고 싶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아동기적 발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이 "한류"의 실체가 아닐까?
그렇다고 한국어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둬야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언어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소통과 이해에 있다. 한국어는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도구다. 다만 '한류'라던지 '붐'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라도 해외에 한국어을 가르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류 지키려면 해외서 이는 한글 붐 외면 말아야”
| 기사입력 2011-01-30 06:03
2009년 10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한글백일장 참가자들이 글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성균관대 사범대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이명학(55·사진) 교수는 2007년 초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제자로부터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한글 붐이 일고 있다”는 거였다. 한국어 학과 지원자들이 우수해 영어과나 일어과에 들어가기보다 힘든 경우도 많다는 게 제자의 말이었다. 마침 한·중 수교 15주년이 되는 해였다. 이 교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한글을 배우는 중국 학생들에게 축제의 장을 만들어주자.”
그해 6월 16일, 베이징 어언(語言)대학교에서 첫 한글 백일장 행사가 열렸다. 경비는 이 교수가 조달했다. “한글 배우는 중국 학생들을 키워보자. 혹시 이 중에서 중국 국가주석이 나오고, 총리 부인도 나오고 그럴지 누가 아느냐”며 친구들을 설득해 지원을 받았다. 성균관대도 우수한 학생들에게 대학원 장학금을 주겠다고 거들었다. 이 교수는 처음엔 한번으로 끝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회를 치르고 나서 생각이 확 달라졌다.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20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온 학생을 보고 말문이 막히더군요. 중국 내 60개 대학에서 자기들끼리 시험을 치러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보낸 겁니다.” 조선족에겐 시험자격을 주지 않아 중국 학생들만 참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한글 실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베이징에선 또 다른 얘기도 들었다. 중국뿐 아니라 몽골·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글 붐이 상상 이상이라는 거였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 교수는 결심했다. “앞으로도 계속 한글 백일장을 열자. 중국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에서도.”
그의 꿈은 다음 해에 이뤄졌다. 중국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된 한글 백일장 소식이 언론에 보도된 뒤 여기저기서 후원이 왔다. 2008년 4월에 상하이에서 제2회 한글 백일장 행사가 열렸다. 이번에도 중국 전역에서 60여 명의 학생 대표들이 참여해 대성황이었다. 그해 10월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8개 대학 59명의 몽골 대학생들이 ‘소망’이란 제목으로 한글 작문솜씨를 뽐냈다. 12월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카자흐 학생들과 고려인 3세 등 39명이 참가해 대회가 열렸다.
한글 백일장에서 입상한 학생들이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1회 베이징 대회 입상자인 뤄위안(羅媛)양은 현재 삼성전자에서 근무 중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에 합격했다. 뤄위안은 “한글 백일장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말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 대회 때 1등을 한 아이게림은 자기 나라에서도 대통령 특별 장학생으로 선발돼 성균관대로 왔다.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아이게림은 졸업 후 카자흐스탄 외교부 공무원으로 특채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한글 백일장에 참가하고 나면 모두들 한국을 사랑하게 된다”며 “백일장에 나왔던 학생들이 앞으로 각자의 나라에서 지도자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자 한글 백일장을 지원하던 기업들이 고개를 돌렸다. 지원이 끊기자 이 교수는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2009년 4월 베이징에서 제3회 대회가 열렸고,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글 백일장 행사가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2010년엔 가까스로 중국 베이징에서 제4회 대회를 치렀다. 올해는 더 이상 대회를 지속할 여력조차 없다. 이 교수는 올해 안식년이다. 한글 백일장 행사가 봄눈 녹듯 스러져가는 걸 보는 게 그에게는 고통이다.
그러나 기적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우즈베키스탄의 한인회에서 “우리가 비용을 댈 테니 올해도 꼭 한글 백일장을 열어달라”는 연락이 온 것이다. 한문학과 교수의 한글사랑, 한글 백일장을 통해 중국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보고 싶어 하는 이명학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는 18일 이뤄졌고 28일 전화로 추가 질문을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후원자가 생겼다던데.
“김홍덕 우즈베키스탄 한인회 이사가 비용을 지원할 테니 한글 백일장을 열어달라는 e-메일을 보내왔다. 그 분은 거기서 16년간 살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 한국 자동차와 전자제품도 인기다. 한데 정작 현지 고려인들이 모국인 한국을 잘 모른다. 다른 민족은 러시아어를 쓰지만 이름은 모국어로 짓는다. 고려인은 이름마저 러시아식이다. 김 이사는 고려인 후손들에게 모국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한다. 또 한국어를 배우는 우즈베키스탄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인근 중앙아시아 학생들도 초청한다고 들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서로 맞붙어 있는 ‘스탄 국가’ 학생들을 타슈켄트로 불러 함께 시험을 치르게 하려는 계획이다. 한데 경비가 많이 들어 가능할지 모르겠다.”
-참가 학생들에게 교통비와 숙식비까지 다 제공하는데 그런 경비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학생들의 형편이 나쁘다. 한글 백일장에 참가하고 싶어도 교통비와 숙식비가 없어서 못 오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걸 해결해줘야 한다. 한글 백일장은 장기적인 투자 효과를 따져보면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현지 학생들 사이에서 한글 백일장은 ‘꿈의 대회’로 여겨진다. 한국어만 잘하면 대회에 참석할 수 있고, 또 거기서 입상하면 한국에 유학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애정과 동경을 우리가 지원해줘야 한다.”
-2007년부터 4년간 중국과 몽골, 중앙아시아에서 한글 백일장을 열었는데 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나.
“기업들은 대부분 취지에 공감하고 격려해 줬다. 하지만 사업과 직접 연결되거나 홍보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지원은 꺼렸다. 기업보다는 소액 지원자들이 더 많았다. 카자흐스탄 대회에서 입상한 학생이 비행기 값이 없다는 얘길 듣고 서울삼성병원 이영탁 교수가 지원을 했다. 몽골 대회 때는 광호공영 황규선 대표가 아무 조건 없이 1000만원을 기탁했다. 한데 이렇게 개인들의 지원을 받아 대회를 계속하긴 힘들더라.”
-본인도 적잖이 기부했다고 들었는데.(※이 교수는 2008년에 1000만원을 내놓았다)
“내가 일하는 대학은 직원들에게 자녀 대학 등록금을 지원한다. 우리 아이들 대학 등록금을 모아 장학금으로 기부할 생각이었다. 그중 일부를 조금 일찍 낸 것이다. 2008년 12월 열린 카자흐스탄 대회가 무산될 뻔했다. 그해 8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거액 후원이 끊겼다. 나도 내고, 친척도 후원해주고, 친구들도 도와줘 가까스로 그 대회를 열었다.”
-후원자 찾기가 그렇게 힘든데 왜 대회를 고집하나.
“1970년대 홍콩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너도나도 중국어를 배웠다. 하지만 10년을 넘지 못하더라. 대중문화란 게 그렇다. 감각적이고 표피적이라 지속되기 어렵다.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에만 의지한다면 한류는 지속되기 어렵다. 한류를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시켜야 한다.”
-한글 백일장에서 바라는 게 뭔가.
“미국엔 정부가 후원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있다. 제3세계 국가 학생들을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게 지원한다. 우리나라에도 이 장학금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많다. 장학금 수혜자들은 모두 각국에서 오피니언 그룹으로 성장해 미국과 그 나라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한글 백일장 입상자들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대회를 전 세계 지한파(知韓派)·친한파(親韓派)를 키우는 장(場)으로 만들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