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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교육과정의 자율성 권한이 축소될 필요가 있다?

2011. 4. 25. 한국교육신문

기사내용 정리
1. 창의성. 영국은 2002년(1.1억 파운드 투자), 호주는 2008년(멜버른선언), 프랑스는 2005년 창의적사고와 문화적 소양에대한 중요성을 강조. 창의성이 중요한 교육과정 요소이긴 하지만 어떻게 평가할지가 숙제다.
2. 학교에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라. 국가교육과정은 최소한의 기능으로, 개혁은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호주는 학생요구에 맞춘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 핀란드도 마찬가지. 학년별 주당 수업 시수편성을 탄력적으로 결정.
3. 교사를 신뢰하라. 교육의 신뢰가 무너진 것은 교사에 대한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 교사의 늘어난 책임으로 인해 교수법에 대한 대처 시간이 부족한 것이 한국 현실(장은희 교수) 교육이 정치가의 입김에 영향을 받으면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들고 공교육이 붕괴. (히로시 카미요)
4. 역사, 예술, 기술, 그리고 체육. 감수성과 문화적 표현 능력을 국가적표준으로 정하고 있는 프랑스는 반드시 이수토록 함. 생활 필수 기량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고 있다.(마틴 벡스터 이사) 5. 다문화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국제화 시대의 다문화 교육은 공통화두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캐나다는 아시아계 이민자를 위해 제 2외국어로 이들 언어를 선택.


지난 봄에 있었던 교육과정 정책 국제 심포지엄에 대한 정리 기사다. 
 
"미래교육 성공?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주 당연한 이야기일텐데... 교육이라는 것이 미래 지향적인 새로운 결과물 산출이 아닌 인간이 이 세상에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다. 우리의 교육은 첨단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 소통하며 함께 사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대학교수를 양성하기 위한 근대 교육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

한국 사회에 있어서 교육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결정권자들(정치인, 권력)이 그들의 가치를 전달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교사의 개인적 판단과는 상관없이 일괄적인 형태를 요구한다. 개성없는 교실의 문제는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다르다는 개념에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교사를 신뢰하지 못함은 제도적으로 교사가 교육의 본질을 개발하는데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는 것과 한국 사회에서 교사라는 "직업"이 지닌 성격과 기능보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선호도가 높다는 것으로 인한 교사의 소명감 부재다. 이 두가지 부분에 대한 개선 또는 변화를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의 통제가 최소화되고 학교의 자율권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선해야 하고, 학교의 개성을 보장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과정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교육 형태 속에서 교육 과정은 상호 보완과 모델링에 따른 평가를 통한 개선이 계속 진행될 것이고 교사들의 정신도 보다 달라질 듯.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교사들의 자발적 공개수업, 수업친구 만들기, 협동학습 연구회 같은 자발적인 움직임들은 좋은 씨앗이 되리라 생각한다.
 
최근 트윗에서 기분좋지 않은 대화가 오고간 적이 있었다. 다문화에 대한 일종의 분노로 가득찬 이의 글이었다. 공감이 되는 내용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경제적이슈가 다문화 사회가 원인이라는 일방적 주장은 불편하다. 게다가 기독교계에서의 이슬람포비아가 확산되는 가운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같은 무슬림 국가의 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심화되고 있다. 일단 한국이 지난 과거 60년사를 돌아볼 때 한국 노동자들의 독일과 중동지역으로 정부주도하에 흘러간 부분을 간과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선 속에서 생존하고, 또 도움을 받았던 역사를 무시하는 이기적인 태도는 일종의 단편적 민족주의적 욕심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 한국 사회도 소수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한국 사회에 머무는 또다른 소수자 이주 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심도깊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최근 프랑스와 영국의 폭동은 우리에게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어떤 형태의 이민법 또는 노동법을 제정하고 수용하며 배척할 것인지 교육계가 먼저 같은 교실안에서 시도하며 제안한다면 의외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이 사회가 기본적으로 추구하려는 방향성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으며, 기독교는 적어도 말하는 것에 대한 실천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 속에 함축된 본질은 결국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면서 부여하신 심성이자 파괴된 형상의 회복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위해 한국 교육과정에 큰 변화를 밑에서의 운동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