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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u in Diversity

교생선생님에 대한 기억. 그때의 수업이란...



고등학교 때였을까? 교생선생님이 온다는 것은 단순한 일상에 일종의 신선한 바람,( 적절한 표현이다) 이었다. 그들에게는 신성한 길을 기대하는 긴장감과 두려움의 복잡한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던 수업을 실제로 하고 평가하는 날은 학생들도 같이 긴장했다. 이미 몇일전부터 말을 맞춰보고 누가 질문하고 답할지, 어떤 흐름으로 갈 것인지 연습하고 습득한다. 그리고 당일이 되면 그전에 있었던 어느 수업보다 긴장되었다. 우리가 실수하면 교생선생님에게 누가 될 수 있었기때문이다. (적어도 가때는 그런 공감대가 있었다.). 그렇게 긴장되게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마침점을 찍으면 귀에 평가하시는 선생님은 밖으로 나가시고 교생선생님은 그제서야 숨을 몰아내쉬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셨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일종의 "교과서"적인 수업이었다. 보기좋은 하나의 오케스트라였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작 중요한 "교육"의 부분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그 당시 교사들의 장학지도에서도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배움의 흥미 대신 잘짜여진 극본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쩌면 그것이 수업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실에서는 어떨까?

교사에게 가르침은 무엇을 의미하며, 수업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또 학부모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며,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적어도 보여지는 교사를 위한 수업은 교사들도 원치 않을 것이고, 국가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보여지는 수업이 그렇게도 중요했을까?
어쩌면 그 시대에 있어서 비슷한 형태의 일체형 수업을 하던 이들에게 새로운 시도나 잘 보여지는 것에 대한 선호도 였을까? 아니면 우리에겐 수업에 대한 평가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그런 형태가 그 당시에 살던 우리들에게 적절한 수업모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의 기억과 오늘의 시점에서 교육에 대한 이해를 본다면 학생이었던 나에겐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 즉 구성원이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를 배웠지, 지식과 배움에 대한 원인을 제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를 추정해본다면(좀 과장되이 말하면) 당시의 학교를 정의해 본다면 지식의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라기보다는 권력과 교실 구성원, 더 나아가 선후배의 관계로 이어지는 학교 구성원들과의 관계성을 원만하게 이뤄가는 "사회 생(공)존의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연과 지연의 밀접한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모두가 이해하는 교육과 학교 현장에서의 교육내용이 다르다면 우리는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교육을 생각할 때,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묵인 속에 진행되는 그런 교육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계화가 가속되고, 다문화로 변화되는 지금 우리에게 적합한 것인지 다시 물어봐야 할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과거의 추억이 된 상황이라면 감사해야 할 일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