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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M

한국사회에서의 기독교 자존감에 대한 고민

어제부터 시작된 GMTC의 부부세미나 시간에 고민하게 된 생각이다.
부부 세미나에서 각 개인의 자존감이 부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기독교 상담과 관련된 여러 의견들과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가운데였다. 제시된 의견과 사례들은 모두 서구 학자에 의해 제시되었고, 성경을 근거로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서구 사회가 가진 다문화성과 개인주의의 성향이 개인의 독특함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동양 사회보다 수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독특하고 사랑받을만 하며, 존중받을만 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시작되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은 결국 개인이 속한 공동체 사회에서 이뤄진다. 사회 규범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운데 개인의 독특함과 존중하는 태도는 서구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개인주의의 결과다. (물론 기독교 영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다르다. 지난 Asian Adult Missionary Kids 모임에서 그들이 이야기한 특수성을 인용해 본다.

"특수성. 우리는 동양인으로서 적어도 세개의 문화 - 부모님의 문화, 다양한 선교지의 문화, 서양 문화와 더불어 여러가지 종교적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동양의 강한 가족중심적 가치와 사회문화적 유산을 인정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어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가족에게 수치가 되지 않기 위해 동양의 체면 문화를 따른다. 또한 아시안 MK들은 모국어를 유지해야한다는 도전과, 어떤 이들은 단일문화 (mono-culture)에 돌아와 적응해야 하는것, 그리고 이미 짜여진 역할에 끼워져야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AAMK 선언문 중에서


이런 특수성은 한 개인이 자신의 자존감을 드러내며 동양사회에 적응하고 뿌리내리는 일을 어렵게 한다. 
개인이 일종의 회심과 더불어 자기 존재를 하나님으로부터 발견하고 회복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인주의를 배경으로 한 사회에서 수용되는 상황과 집단주의의 배경에서 자기를 부정하게 되는 상황은 하니님이 주신 자존감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기여하느냐, 아니면 계속 자존감을 공격받고 상하게 되느냐의 차이를 만들게 된다. 물론 각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보다는 다양성을 존중받는 사회에서 적응하기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상담학이 자존감을 찾는 이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신앙의 결과이고, 자존감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종의 
불신앙(또는 부족한 신앙)때문이라고 정죄감을 주는 것일지 모른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한국 사회의 기독교는 결코 서구의 개인주의 대신 집단주의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동체 내부에서 튀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존감"을 지켜가는 긴장관계를 갖고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조화와 공동체의 덕이라는 명목으로. (이 특징은 결코 부정적이지는 않다. 한국 사회 내에서 기독교 공동체가 기여한 많은 부분들은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하게 된 집단이 있다. 바로 TCK/MK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 사회 재입국은 일종의 한국화를 의미하는 것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불가피한 선택일지 모른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존감에 심각한 상처를 받게 되고 적응이 어렵게 되는 상황이다. 거기에는 그들의 자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서구적인 배경 속에서 이뤄진 부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독특함은 한국 공동체의 조화와 덕을 쉽게 흐트러뜨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생활 습관은 전통적인 한국 사회의 생활습관과 다르고, 어떤 부분(의복, 언어, 태도 등)에 있어서는 해를 끼친다는 인식이 있다. 어쩌면 TCK들이 느끼는 피해의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TCK들이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동안 인정받았던 존재감을 부정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고리타분하다'라던지 '판단당한다'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더 정확한 것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는 무언의 압박에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죄하기 때문에 죄책감 또는 사회 문제아로 찍히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게 된다. 때로는 거른 사회를 비판하고 거부하기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적응자가 되거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경우도 보았다. 교회도 이럴찐대 사회는 어떨까? 일종의 경쟁체제 속에서 이런 습관이 함께 하는 개인 또는 집단에게 해를 끼칠 경우 "공공의 적"이 된다. 다를 뿐인데 그것이 타도/기피의 대상으로 낙인찍힌다면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읿반적으로 기독교 상담학에서 제시하는 자존감이 한국 사회의 기독교인들에게 수용가능한 것인가 이다. 자신을 이해하는데 전적인 도움을 받겠지만 그 이해를 공동체에서 몸으로 받아내는 데에는 서구 공동체에 비해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배타적인 요소로 인해 TCK/MK들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인색하거나 부정적이다.
아마 그 답은 그 상황에 직면한 개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부분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여기에 있어서는 욥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다루는 "한 개인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존감을 찾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결국 사회(교회)가 그 사람을 수용하고 대응하는 태도와 큰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한국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들이 가진 사회적 배경이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럴때(자존감의 영역에 있어서) 개인의 독특함을 그대로 수용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한국 교회 공동체의 태도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도록 강하게 권고해야 할 것이다. 
이 둘의 긴장감은 한국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표면화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세계관을 고려할 때 어떤 것이 성경적이며 한국 사회(더 나아간다면 동양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럴때 각 개인의 자존감과 교회 공동체의 조화를 설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문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